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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적트레킹 - 공주 송산리고분군 무령왕릉

허영꺼멍 2017. 12. 27. 0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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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유산 백제역사유적지구

공주시 송산리고분군 무령왕릉


⊙ 2017년 00월 00일 ⊙


 

천년고도 경주에 대릉원 천마총이 있다면 백제 공주에는 송산리고분군이 있다. 공주 송산리고분군은 사적 제13호이며, 백제시대 사후세계를 엿볼 수 있는 중요한 공간으로 특히 무령왕릉은 국내 가장 아름다운 사후세계를 보여준다.


▲ 무령왕릉 모형


▲ 고분군 입구 매표소

여행별점 : ★★★★☆

백제 웅진(공주)왕족의 무덤

무령왕릉 무료주차장 : 충남 공주시 웅진동 318-2


백제 22대 문주왕은, 475년 고구려 장수왕의 침공으로 한성(서울)이 함락되자, 웅진(공주)으로 천도 후 538년 사비(부여)로 왕궁을 옮겨가기 전인 약 64년간 머문 백제의 도읍지로 이 일대해발 130m에 불과한 송산에서 왕과 왕족의 무덤이 확인되었으며, 사적 제13호 지정과 함께 송산리 고분군으로 부른다.


▲ 고분군 전경

안내글을 옮겨보면 다음과 같다. ‘공주시 금성동과 웅진동의 경계에 있는 송산의 남쪽 경사면에 자리하고 있는 웅진시대(475-538) 백제의 왕과 왕족들의 무덤이다. 원래 17기의 무덤이 조사되었지만, 현재는 무령왕릉을 포함하여 1~6호분까지 7기만 복원되어 있다. 이들 무덤은 만들어진 형태에 따라 굴식돌방무덤과 벽돌무덤의 두 종류로 구분된다.’






‘1~5호분은 백제가 전통적으로 사용한 굴식돌방무덤으로, 돌로 널방을 만든 후 천장을 돔 형태로 둥글게 마무리하였으며, 6호분과 무령왕릉은 중국 남조의 영향을 받은 벽돌무덤으로 터널형의 널방 앞에 짧은 터널형 널길을 가지고 있다. 무령왕릉을 제외한 나머지 무덤들은 도굴로 인하여 부장품이 거의 남아 있지 않았지만 웅진시대 백제문화의 우수성과 활발했던 대외교류를 확인할 수 있는 대단히 중요한 유적이다. 201578, 백제역사유적지구로 유네스코세계유산에 등재되었다.’



송산리고분군의 무덤 7기 중 1-4호분은 1927년에 발견되었다. 4기 모두 백제의 굴식돌방무덤으로, 발굴 당시 일본인들에 의해 도굴에 가까운 발굴이 진행되었다. 조사 당시에는 5기의 고분이 자리하고 있었으나, 현재는 4기만 남아있고 1~4호분으로 명명되었다. 발굴 당시 금제와 은제, 그리고 금동제 유물 등이 출토되었다.

 

5호분은 1932년에 앞서 발굴한 4기 고분을 일반인에게 개방하기 위해, 관람료를 조성하는 과정에서 발견되었다. 이 무덤 역시 일본인들에 의해 발굴되었는데, 1~4호분과 마찬가지로 굴식돌방 무덤이고, 벽돌로 만든 관대가 두 개 남아 있으며, 입구에서 널방에 이르는 널길이 우측에 붙어 있다. 5호분도 부실한 조사와 도굴 등으로 인해 약간의 금.은제 장신구와 그리고 토기, 철제 유물 등이 남아있다.





6호분은 1932년 일본인 가루베지온이 발견, 발굴하였는데, 공식적인 조사는 1933년에 조선 총독부에 의해 이뤄졌다. 특히 사신도로 유명한 6호분은, 벽돌로 만든 벽돌무덤으로, 규모가 무령왕릉에 필적할 정도지만, 이 또한 잘못 된 발굴과정으로 인해 안타깝게도 유물이 많이 남아있지 않다.


 

무령왕에 관한 안내글을 옮겨보면 다음과 같다. ‘501년 동성왕의 뒤를 이어 무령왕이 즉위하였다. 그의 나이 40, 늦은 나이였지만 즉위 직후 반란 세력을 진압하며 혼란했던 정국을 수습하고 22담로에 왕족을 파견하여 지방 통제력을 강화하였다. 수리시설을 확충하고 농업을 발전시켜 경제를 든든히 하는 한편 대외적으로 고구려와의 전쟁을 지속해 한강 일부를 수복하였다. 강대국이었던 양나라에 사신을 보내 영동대장군의 작호를 받았고, 이웃한 일본과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였다. 백제는 무령왕의 강력한 통치를 바탕으로 왕권국가를 재건하는데 성공하여 스스로 여러 차례 고구려를 격파하고 다시 강국이 되었다하고 선언하였다.’



무릉왕릉은 백제 무령왕과 왕비의 능이다. 무령왕릉은 일제강점기에는 6호분의 현무릉으로 인식되어 주목되지 않았을 것으로 추정한다. 이 때문인지 다행스럽게도 도굴을 피할 수 있었는데, 이 왕릉은 1971년 여름 장마철에, 5호분과 6호분에 스며드는 물기를 막기 위한 배수로 공사 과정에서 우연히 발견되었다.



무령왕릉에서 출토된 유물은 모두 1084,600여 점 이상에 이르는데, 그 하나하나가 호기심을 불러일으키고, 학술적 가치 또한 매우 높다. 또한 무덤 속에서 나온 묘지석으로 인해 무덤의 주인공을 알 수 있는 왕릉이라는 점에서, 국내외에 커다란 반향을 일으켰으며, 백제에 대한 재평가는 물론이고, 나아가 새로운 백제사 연구를 하게 만드는 계기가 되었다.


계룡산 설경을 보기위해 공주까지 진입하였는데 아쉽게도 날씨가 흐려 오르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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