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승암 대웅전 앞 전경 ▲ 국보 321호 대승사 목각아미타여래설법상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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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덕산 사불산 대승사 절집 마당 주차 : 경북 문경시 산북면 전두리 9-3 |
울창한 숲, 거친 바람이 살포시 들춰 낸 숨겨진 풍경 그리고 가을 그 깊고 진한 향기 속으로 빠져든다. 선종사찰 ‘대승사(大乘寺)’ 초입, 참 나를 찾고자 일주문 (一柱門)을 통과한다. 두 개의 굵은 기둥 위 맞배지붕의 위엄과 달리 편액은 좁고 가냘프다. ‘사불산 대승사(四佛山大乘寺)’ 1911년 이곳 주지였던 권상로(權相老 1879~1965) 작품이다.
▲ 절집 초입 일주문 전경
계절이 은은하게 숨어든 숲길 장승처럼 우뚝 서 있는 일주문은 겉과 속이 다르다. 풍족하지 못한 절집 사정 때문일까? 사찰의 세 번째 또는 마지막 문으로 알려진 불이문(不二門) 편액이 일주문 뒤편에 걸려있었다. 뿐만아니라 불이문(不二門)이 아니라 불이문(不貳門) 즉 二를 貳로 표기했는데 둘 다 ‘두 이’이지만 왜 二(두이), 가 아니라 貳(두이)라 했는지 궁금증을 자아낸다.
▲ 일주문을 지나 곧장 올라서면 경내 주차장에 도착한다 주차장 담벼락 위 은행나무를 지붕삼아 서 있는 1기 탑과 동물 조형물
번잡함은 사라지고 햇살과 단풍이 어우러진 그 계절의 절정에 미처 덜 여문 가을색감은 매우 유혹적이다. 세월 흔적을 고스란히 껴안고 사는 은행나무보다 더 오래 자리를 지켜온 탑의 모습일까? 아니면 다른 절간에서 잠깐 방문했다 눌러앉아 버린 걸까? 훼손의 정도가 심한 탑 1기가 묵묵히 자기만의 샊을 내고 있다.
탑의 크기에 비해 깊게 조성한 감실을 보니 탑 그자체가 절간이요 법당이 아닌가? 청명한 하늘 아래로 비춘 햇살이 감실을 향하면 배시시 미소를 짓거나 턱을 당기고 눈을 살포시 뜬 부처의 자비로움이 신도의 눈과 마주쳤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다보니 문득 그 감실의 주인은 지금 어디서 중생을 구제하기에 그토록 오랜 세월 자리를 비웠을까 그 소식이 궁금해졌다.
대웅전 그리고 만난
국내에서 가장 규모가 큰, 화려하고 장엄한 대승사목각후불탱(국보 제321호)
▲ 대웅전 꽃창살문이 아름답다. 절집 중심건물이다. 대웅전은 정면 3칸, 측면 3칸의 다포형식을 한 겹처마 팔작지붕 건물이며, 화려한 꽃문살을 열고 보면 석가여래를 중심불로 모시고 협시불로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을 봉안하고 있다. 특히 대웅전 중심불 뒤편으로 국내에서 가장 규모가 큰, 화려하고 장엄한 목각후불탱(국보 제321호)이 장식되어 있다. 목각후불탱은 아미타여래 설법모습으로 목각탱의 크기는 높이 4m, 너비 3m이고 11개의 판목으로 구성되었다. 본존불을 중심으로 8대 보살과 불제자 사천왕, 지물 등 25구를 조각하고 그 앞에 명패를 달았다.
사불산(912m) 공덕봉 허리춤 해발 600m 위치한 대승사는 대한불교 조계종 제8교구 본사인 직지사(直指寺)의 말사이며, 삼국유사 권3에 의하면 신라 진평왕 9년(587) 공덕봉(功德峰) 중턱 사면석불이 붉은 비단보자기에 싸여 떨어졌다는 소리를 듣고 왕이 찾아와 예배하고 바위 옆에 절을 만든 후 망명비구(亡名比丘: 이름과 행적을 알 수 없는 비구스님을 통칭해 부르는 말)에게 향화(香火)를 끊이지 않게 하게 하였다 한다.
▲ 목각아미타여래설법상(국보 제321호) 대웅전 처마 매달린 풍경은 방문객의 마음을 송두리째 훔친다. 차분히 걸으며 모든 것을 내려놓은 듯 평온한 마음은 두려움을 떨쳐내고 구도의 마음으로 길을 연다. 비록 묵직한 세월의 흔적은 화마로 잃어버렸다지만 조각 칼날을 통해 새겨진 목불탱을 만나면 마음을 절로 평화롭게 만들어주는데 부족함이 없다.
목각탱은 본래 영주 부석사(浮石寺) 소유였다. 고종 6년(1869) 화재로 불타 소실된 절을 다시 조성하면서 거의 폐찰로 있던 부석사 무량수전에 있던 목각탱을 옮겨 왔지만 몇 년 후 부석사에서 되돌려 줄 것을 요구하여 송사를 벌렸는데 상주대승사외사사승도등장, 상주사불산대승사승도등장, 도내상주사불산대승사제승등장, 완의 등 관련서류를 남겼는데 이 서류가 보물 제575-1,2,3,4,호이다. 부석사의 반환 요청에 대승사는 부석사 조사전 수리비용 250냥 을 부담하는 조건으로 일단락되었다고 목각탱 하단에 기록하고 있다.
금동관음보살좌상(金銅觀音菩薩坐像. 보물 제991호) 스님이 참선 수행하는 공간인 선당(禪堂)에 봉안되어 있어 일반인은 만날 수 없다. 조선 중기 관음보살좌상으로 전체 높이 90㎝, 무릎 너비 57.5㎝이다.
▲ 대승사 노주석(경북 유형문화재 제407호)
1729년 작품인 노주석은 석등을 대신하여 세운 것으로 좌, 우 한 쌍이다. 야간 행사가 설법을 위해 불을 밝히는 일종의 관촉대로 절집에서는 대부분 석등을 세우는 반면 많지 않은 노주석이다.
사찰 대부분 임진왜란으로 전소되고 훗날 몇 번의 재건을 하였으나 대화재로 소실되어 오늘날 대승사는 옛 전각이 없지만 “목각아미타여래설법상(국보 제321호)을 비롯하여 많은 불교유적이 전해지고 있는 천년고찰임은 틀림없다. 대승사 불교 문화재로 “목각아미타여래설법상(국보 제321호), 문경 대승사 목각아미타여래설법상 및 관계문서 보물 제575-1,2,3,4,호, 문경 대승사 금동관음보살좌상(보물 제991호), 문경 대승사 금동아미타여래좌상 및 복장유물(보물 제1634호), 대승사마애여래좌상(경북 유형문화재 제239호), 대승사운필암 목조아미타여래좌상 및 지감(경북 유형문화재 제300호), 문경 대승사운필암 후불탱화(경북 유형문화재 제403호), 문경대승사노주석(경북 유형문화재 407호), 문경 대승사 묘적암 나옹화상영정(경북 유형문화재 제408호), 문경 대승사명부전 지장탱화(경북 유형문화재 제545호)”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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