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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찰트레킹 - 경북 문경 김룡사

허영꺼멍 2019. 11. 14. 1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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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11 03        


가을홍화문(紅霞門)을 열다

경북 문경 운달산 김룡사(雲達山 金龍寺)




운달산(雲達山 또는 용암산 龍巖山)자락 진평왕 10(588) 조사 운달(雲達)이 창건하였다 전하는 김룡사(金龍寺)가 자리잡고 있다. 창건 당시 운봉사(雲峰寺), 1904년 불리다 김씨성을 가진 부사가 죄를 짓고 이곳에 머물다 신녀와 결혼하여 용이란 아들을 낳아 살았다는 전설과 함께 김룡사(金龍寺)로 불리게 되었다 한다.


▲ 운달산 김룡사 전경 


▲ 1709년 조성된 삼층석탑




숲길을 걷는 듯 '문경 김룡사'

경북 문경시 산북면 김용리 407


1965년 은거생활을 마친 성철스님은 운달산김룡사(雲達山金龍寺)를 찾아 한 해를 머물며 사부대중을 향해 첫 설법을 하였고 1966년 가을 낙엽이 흩날리던 산길을 내려 해인사 백련암으로 향하셨던 곳이다. 사찰은 1997년 화재로 전각이 사라지고 다시 그 위에 재건 한 사찰로 일제강점기 당시 전국 31본산 중 하나로 50여 말사를 거느렸던 사찰로 알려져 있다.


▲ 전나무 숲길




울울창창한 전나무 숲길을 따라 들어선다. 일주문에 내걸린 홍화문(紅霞門) 현판을 만난다. ‘붉은 노을절집으로 들어서는 초입에 사찰의 공간보다 활엽수와 전나무의 어울림 바로 가을 단풍속으로 향하는 화원의 간판처럼 내걸려 있다. 홍화문 아래는 구한말 독립운동가이자 상해 임시정부 요인이던 김가진(金嘉鎭))의 작품이라 한다.





▲ 사천왕상 재료가 나무가 아니라 석조 사천왕상이다.


안내글을 옮겨보면 다음과 같다. '운달산 김룡사는 신라 진평왕 10(588) 운달조사에 의해 창건이 되었으며 대한불교 조계종 제8교구의 말사이다. 김룡사는 원래 금선대에 위치하고 조선중기까지 운봉사로 불리었으며, 이후 17세기부터 각종 기록을 통해 김룡사로 불려지게 되었다. 효종과 숙종이 왕위에 있던 시기에 사찰이 급격하게 커지기 시작했으며 영조와 정조시기를 거치면서 사찰의 규모가 정해졌다. 이후 큰 사찰로 자리를 잡았으며 일제강점기 사찰령 체제하에서는 전국 31본산 중의 하나였다.'



▲ 대웅전 전경(경북 문화재자료 제235)    




대웅전 안내글을 옮겨보면 다음과 같다. '이절은 신라 진평왕 10(588)에 운달조사가 처음 건립했다. 혜충선사가 조선 인조 2(1624)에 중창 했지만 1643에 소실되어, 동왕 27(1648)에 복원하였다고 한다. 1998년 대웅전을 제외한 대부분 건물들이 화제로 인하여 소실되는 수난을 겪었다. 대웅전은 정면 3, 측면 3칸 팔작지붕 다포계의 건물로 외 3출목, 4출목으로 되어 있고 상부가구는 오량가이다. 천장은 3종류의 반자를 사용하여 재치 있게 처리 하고 있는 등 한국 건축의 조형상 특징을 잘 간직하고 있는 건물이다.'





안내글을 옮겨보면 다음과 같다. '김룡사는 학교설립과 교육활동도 활발하게 진행하였다. 1907년 경북 불교계 최초의 학교인 경흥학교를 김룡사에 설립하였고, 중등 정도의 교육 기관인 지방학림을 운영하였다. 1919413일 김룡사 학림학생 18명이 만세시위를 모의하다가 무산된 일도 있었다. 김룡사의 지정문화재로는 동종과 영산회괘불도가 보물로 지정되어 있으며 명부전 목조지장삼존상 및 제상, 대웅전, 석불입상과 삼층석탑 등이 지방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이외에 산내 암자인 금선대, 양진암, 화장암, 대성암에도 다양한 문화제가 남아 있다.'






문경 김룡사 영산회괘불도(보물 제1640)

 

숙종 29(1703)에 수원을 비롯한 6명의 화원이 제작한 괘불도로서, 오른손을 내리고 서있는 석가모니와 그를 둘러싼 많은 권속들을 질서정연하게 배치한 모습은 당시 문경, 상주 등 경상북도 지역에서 유행하던 괘불도의 형식을 잘 보여준다. 전체적으로 많은 인물들을 배치하면서도 불격에 따라 크기에 차이를 두어 표현함으로서 권속 간의 위계를 효과적으로 표현하였으며, 본존과 멀어질수록 크기를 작게하여 본존을 더욱 돋보이게끔 하였다. , 보살을 제외한 인물은 바람질기법을 사용하여 입체감을 강조하였으며, 특히 10대 제자와 사천왕, 팔금강은 세밀하고 능숙한 필치가 돋보인다. 이 괘불도는 17세기 경상도 지역의 괘불도 양식을 계승하는 한편, 이후 안동 봉정사 괘불도(1710), 상주 남장사 괘불도(1788)로 이어지는 과도기적 양식을 보여주는 작픔으로서, 영남지역의 영산회괘불도의 대표적인 작품 가운데 하나로 평가된다.






엉뚱한 곳에 낮은 듯 보이지만 가장 높은 곳에 단층 기단부 위 3층 탑신을 올린 탑 1기를 만난다. 도지정문화재자료 제667호인 삼층석탑은 1709년 조성된 탑으로 초층 탑신석남면에 국내 유일 불상을 새겨 놓았다.







김룡사 석불입상(경북 문화재자료 제655)은 숙종 35(1709) 풍수에 의해 김룡사 지맥을 비보하기 위해 조성된 듯 보여지는 미륵불로 추정하고 있다.





명부전 가는 길 신도의 발자국 소리조차 낙엽이 덮어 버렸다. 중심법당으로부터 뚝 떨어져 있는 명부전을 찾는 발걸음이 뜸한 덕분에 가을 단풍 낙엽길 분위기가 물씬 풍겨져 난다. 명부전은 김룡사가 누운 소의 형상이며, 명부전에 눈 부분에 해당한다고 한다.


▲ 해우소에서 바라 본 외부 가을 전경 


도지정문화재로 지정된 김룡사 유물은 1803년 비단바탕에 채색한 대웅전 내 불화 영산회상도(靈山會上圖·유형문화재 제524)와 천도의식에 사용되는 불화 현왕도(現王圖·유형문화재 제525), 절집에서 조금 떨어진 언덕에 자라잡은 삼층 석탑(문화재자료 제667) 등이다. 김룡사는 이번 지정을 통해 보물 2, 등록문화재 2, 유형문화재 7, 문화재 자료 2점 등 모두 13점의 문화재를 보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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