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가산(855m)과 군자산(948m) 사이 보배산이 품고 있는 고졸(古拙)한 사찰을 찾아 나선다. 충청북도 괴산군에서 만나는 보배산(寶賠山)의 옛 지명은 보계산(寶蓋山750m)이며, 보배산 깊숙한 청석골 계류를 따라 오르다보면 6세기 신라 법흥왕 시절 조성한 고찰 각연사(覺淵寺)를 만난다.
▲ 각연사 전경
▲ 석조비로자나불좌상(보물 제433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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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寶蓋山 覺淵寺(보개산 각연사)' 무료주차 : 충북 괴산군 칠성면 태성리 산 7-1 |
사찰의 경계 일주문에 주차를 한 후 내려서니 호젓하다 못해 적막감이 온몸을 감싸 안는다. 봄날 오얏나무와 벚꽃이 피기에는 아직 이른 계절이라 밋밋하다. 가을 단풍이 익어갈 즈음 찾아왔다면 곱디고운 화사한 산길의 마중을 받으며 들어 설 수 있을 만큼 주변 경관이 아름답지만 겨울 끝자락 마지막 칼바람이 부는 계절에 찾은 절집은 봄 햇살에 녹아나 몸 녹이는 청석골 물소리만이 간간히 들려온다.
▲ 일주문 앞 주차를 하거나 차량으로 이 길을 따라 진행하여도 안에 주차공간이 있다.
보개산(寶蓋山)이 품은 사찰 각연사(覺淵寺)는 절집 그 자체가 자연이다. 보개(寶蓋:탑에서 보륜 위 덮개 모양) 즉, 각연사는 주변 산이 곧 부처가 아닐까 싶다. 신라 법흥왕 2년(515) 유일(有一大師)가 창건한 고찰로 법주사 보다 빠른 시기이지만 오늘날 법주사 소속 말사로 전략 할 만큼 민가에서 잊혀 버린 사찰이기도 하다.
일주문으로 들어서다.
▲ 일주문 전경
넓은 공간 2층 경내 구조로 비로전·대웅전·칠성각·산신각 및 요사채 2동이 있으며, 대웅전과 비로전이 각각의 공간을 나누어 구역을 만들어 놓고 있는데 위쪽 공간에 비로전(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125호)이며, 아래 공간이 대웅전이다. 각연사에는 석조비로자나불좌상(보물 제433호), 각연사 통일대사탑비(보물 제1295호), 각연사 통일대사탑(보물 제1370호)과 각연사 대웅전(시도유형문화재 제126호), 각연사 비로전(시도유형문화재 제125호), 각연사 석조귀부(시도유형문화재 제212호) 등이 있다.
대한불교조계종 제5교구 본사인 법주사(法住寺)의 말사인 각연사(覺淵寺) 창건 설화에는 까마귀와 관련되어 있다. 신라 법흥왕 시절 유일(有一)이란 스님이 칠성면 쌍곡리 사동 근처에 절을 짓기 시작하는데 까마귀 떼가 나타나 대팻밥과 나무 부스러기를 물고 날아가는 것을 이상하게 여겨 따라가 보니 연못에 대팻밥을 떨구고 쉬는 까마귀를 보고 물속을 보니 석불이 있어 못을 메워 절을 짓고 각연사(覺淵寺)라 하였다 한다. 각연사대웅전상량문(조선 영조 44년.1768)에 의하면 고려 태조의 존경을 받던 통일대사(通一大師)가 각연사를 중건하니 수많은 사람이 법회에 구름같이 모였다 한다.
절집으로 들어서면 덤벙주초 위 세워진 중심법당 대웅전(충북유형문화재 제126호)과 보리수나무 그늘아래 비로전(충북유형문화재 제125호)이 각각의 공간을 두고 있다. 각연사는 신라에서 정식적으로 불교가 공인된 법흥왕 15년(528)보다 약 13년이 빠른 신라 법흥왕 2년(515)에 창건되었을 만큼 당시 최고의 명당 터에 자리 잡았다.
괴산 각연사 대웅전(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126호) 탑재로 보이는 부재가 안타까움을 더해준다. 큰 마당과 달리 건물은 너무도 소박하다. 다듬지 않은 자연석을 덤벙 덤벙 놓고 기둥을 올려 절집을 세우다 보니 주초석의 높낮이가 기둥의 길이에 따라 제각기 다르다. 자연에서 얻은 목재를 최소한 가공하여 만든 흔적을 통해 목수의 장인정신을 느낄 수 있으며, 이런 건축수법을 오늘날 덤벙 주초 양식이라 한다.
▲ 대웅전 전경
각연사 대웅전 관련 안내글을 옮겨보면 다음과 같다. ‘이 건물은 석가여래 좌상을 주존불로 모시고 있는 불전으로 정면 3칸, 측면 2칸의 다포식 맞배지붕이다. 이 사찰은 신라 법흥왕 때 무일대사가 창건하였다고 하나 영조 44년(1768)에 작성된 대웅전 상량문에는 918~975년 사리에 통일대사가 창건한 것으로 기록되어있다. ’
‘ 응경 순치 강희 연간에 보수하였고 영조 44년(1766)에 중건하였음을 알 수 있다. 현재의 건물은 1977년에 보수한 것으로 조선후기의 건축물로 전통적인 불교건축 양식이다. 석가여래는 석가모니를 증인도 가비라에서 정반왕의 태자로 태어나 29세에 생사해탈의 법을 구하기 위해 집을 나가 고행을 하다가 35세에 불타가 되었다. ’
괴산 각연사 비로전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125호)
대웅전 공간을 가로 질러 또 다른 공간인 비로전으로 향한다. 비로전 앞에는 350여년 된 보리자나무 보호수가 하늘을 향해 뻗어 있다. 비로전 안에는 각연사 석조비로자나불좌상(보물 제 433호)이 안치되어 있으며, 앞 마당에는 연지가 형성되어 운치를 더해준다.
▲ 비로전 전경
사찰 창건 설화에 나오는 연못 속 부처를 만날 수 있는 곳이다. 광명의 부처인 비로자나불(毘盧舍那佛)을 모신 공간으로 대적광전(大寂光殿)으로도 불린다. 각연사 비로자나불은 국내 최고의 걸작으로 빨간 립스틱을 바른 듯 서민적인 분위기를 하고 있다. 비로전에는 초석하나도 예사롭지 않다, 삼국시대 고맥이초석 수법이며, 정면 3칸, 측면 3칸의 팔작지붕이다. 비로전에 관한 안내글을 옮겨보면 다음과 같다. [이 건물은 보물 제433호인 석조 비로자나불좌상을 모시고 있는 불전이다. 처음 지은 시기는 알 수 없으나, 1975년에 중수할 때 발견된 기록에 의해, 인조 26년(1648), 효종 6년(1655), 광무 3년(1899) 그리고 1926년에 각각 중수하였음을 알 수 있다. 정면 3칸, 측면 3칸의 팔작지붕집이다. 초석은 신라 계통의 양식을 한 원형으로 그 위에 약간의 배흘림을 한 둥근 기둥을 세우고 있다. 전체적으로 단아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비로자나불은 연화장세계에 살며, 그 몸은 법계에 두루 차서 큰 광명을 내비친다는 부처이다. 밀교에서는 대일여래라고도 한다.]
각연사 석조비로자나불좌상 (보물 제 433호)
비로자나불이 좌중하고 있는 석불 중대석은 넝쿨구름무늬가 새겨져 있으며 사자 상반신 형상의 조각이 있다. 하대석 팔각에는 향로, 꽃, 가릉빈가 합장상 등이 조각되어 있다.
각연사 내 비로전에 모셔져 있는 괴산 각연사 석조비로자나불좌상에 관한 안내글을 옮겨보면 다음과 같다. [이 불상은 광배와 대좌를 모두 갖춘 완전한 불상으로 신라 말부터 크게 유행하기 시작한 비로자나불상의 하나이다. 화려하고 복잡한 8각대좌 위에 당초무늬와 불꽃무늬 그리고 9화불이 현란하게 새겨진 광배를 배경으로 앉아있는 이 불상은 대좌와 광배가 잘 조화되게 아담하고 오밀조밀한 모습을 나타내고 있다.
계란형의 단아한 얼굴에 알맞게 묘사된 이목구비, 조용한 미소 등에서 단정한 스님의 얼굴을 엿볼 수 있으며, 결가부좌한 자세와 지권인에서 이루어지는 삼각형 구도의 체구는 우람하거나 격정적인 모습이 아닌 안온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신라 전성기의 전형적인 불상처럼 긴장된 활력과 세련된 기교는 줄었지만 일면 단아하면서 일면 화려해진 조각양식을 묘사하고 있어서 선적인 독특한 분위기를 보여주고 있다.]
각연사에서 산자락을 따라 약 1km 위치에 자리 잡은 통일대사탑비(보물 제1295호)와 통일대사부도(보물 제1370호) 그리고 선적당(善跡堂)을 또다시 방문하면서도 깜빡 잊어 버리고 찾아보지 못해 돌아와 아쉬움을 글로 남겨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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