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선 국사는(827~898)으로 신라 승려인데 이곳에서 멀지 않은 영암출신으로 신증동국여지승람 및 도선국사실록에 보면 우리나의 형국이 배와 같아서 땅덩이가 안정되지 못하므로 도선 국사가 운주사에 천불천탑을 조성해 국토의 안정을 이룩했다는 기록이 있다. 운주사는 지금 천불천탑은 없지만 국내에서 가장 많은 탑과 석불을 모시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면 과연 이 천불천탑은 어떤 이유로 조성되었으며, 운주사는 존재하였을까? 천불천탑으로 세간의 이목을 받는 운주사의 기록으로 유일한 동국여지승람 기록에 운주사 재천불산 사지좌우산척 석불석탑 각일천 우유석실 이석불 상배이좌(雲住寺 在天佛山 寺之左右山脊 石佛石塔 各一千 又有石室 二石佛 相背以坐)가 있다. 즉, 운주사는 천불산에 있으며 절 좌우 산에 석불 석탑이 각 일천 기씩 있고 두 석불이 서로 등을 대고 앉아있다는 내용이다. 조선조 인조 10년(1632)에 발간된 능주읍지에서도 동국여지승람에 기록된 내용을 반영하고 있어 당시에 천불천탑의 존재는 사실로 인정되며, 사찰의 존재도 그 후 정유재란 당시 소실되고 현재 석탑 17기와 석불 80여기가 남아있다. 현재는 사적 제312호로 지정되어 있다.
와불의 전설은 소설 장길산을 통해 고달근의 밀고로 위기에 처한 장길산은 도주하면서 조정의 부패와 백성의 어려움을 이 운주사를 통해 새로운 획을 긋기 위해 노력하면서 운주사가 알려지기 시작한다. 그럼 장길산 누구며, 이 운주사와 관련이 정말 있는 걸까? 장길산은 조선 숙종 때 해서지방의 구월산을 중심으로 한 도둑의 두목이었는데 왜 장길산이 와불 속으로 들어 왔을까? 그건 17세기 이후 어려운 사회를 통해 서얼, 승려, 농민 등 다양한 층이 결합하여 새로운 왕조를 만들 꿈을 통해 이 와불로 연결짓게 된 것이다.
운주사는 우주를 옮겨 놓은 세상이다. 와불을 북극성으로 칠성바위를 북두칠성으로 본다면 우주전체의 별자리를 지상에 내려놓은 것으로 우선 칠성바위가 북두칠성의 크기와 무게가 제각기 다른 것처럼 둥글게 깍아 만든 돌이 제각기 다르며 놓은 형상이 영락없이 북두칠성이라는 것이다. 지금은 너무 많은 석탑과 불상을 잃어버려 정확한 위치는 알 수 없지만 양쪽 산을 넘나들며 아슬아슬한 바위에 꼭 석탑을 안치할 이유가 있다면 꼭 그곳에 자리잡아야 하는 큰 별자리였기 때문이다. 지금의 일부 석탑과 불상은 1800년 대대적 수리를 당시 자우스님이 하면서 여기저기 흩어진 석탑을 옮겨 오거나 민가에 있던 것을 찾아와 옮겨 놓는 과정에서 원래의 위치가 아니라는 것이다.
더욱 운주사를 신비롭게 만드는 것은 탑에 새겨진 기하학적 문양과 불상의 무표정이다. 당시 어떤 집단 또는 세력에 의해 조성된 운주사의 천불천탑은 그렇게 대중에게 대우받는 불교적 이해접근은 어렵다. 우리나라 역대 사찰에서 이처럼 많은 불상과 불탑을 조성한 예가 없다는 사실만으로도 운주사의 천불천탑은 우리와 다른 집단 다른 목적이 있어 보인다. 운주사 앞으로 당시 뱃길이 열려 있었고, 중국과 교류가 활발하였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화순 인근지역에는 유독 석장승이 많이 있다. 조각도 놀라울 정도도 정교하지만 운주사의 석장승은 전혀 그러하지 않다. 운주사를 배의 형국으로 천불천탑을 만들었다는 주장은 과연 지금 현존하는 불상과 불탑이 제 위치에 있는가를 생각해 보고 말해야 한다. 움직일 수 없는 것은 산비탈에 있는 석탑과 와불 그리고 칠성바위와 큰 덩치의 탑과 불상군이다. 입구에서 만나는 불상은 거의 옮겨 놓은 것으로 추정이 가능하기 때문에 지금까지 많은 학설은 사실상 신빙성이 없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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