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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시 지례예술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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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끈 군불지펴 구들장 자글자글 익어 갈 즈음 이불속 고이 묻어둔 밥그릇은 따뜻할까?
대한민국 예술인이 묵어가는 첩첩산중 외딴집을 찾아 떠나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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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을 하나 줍다
책장에서 책 한권을 찾아내고 기억을 떠올렸다. 몇 년 전 지례예술촌을 찾았을 때 시집을 한권 받았다. 2009년 영어와 일어로 번역되어 출판된 김원길 시인의 시집으로 시집 제목이 “아내는 남자로 태어나고 싶다 한다”였다.
나는 만약 다시 태어난다면 / 여자가 되어야겠다고 하니 / 아내는 다시 태어나면 / 남자가 되겠단다. / 나는 여자로 태어나 당신같은 남편을 만나 / 시중을 잘 들겠다고 하니 / 아내는 남자로 태어나 나는 들복고 / 구박해 보았으면 원 없겠단다. / 나는 들복이고 구박을 받으면서도 / 남편을 위해 잘 참고 견디겠다 하니 / 아내는 내가 아무리 잘 해줘도 / 한사코 트집잡고 윽박질러 볼 거라 한다. / 아내여 / 갈쿠리 손에 흰 듬성한 / 미운 아내여 / 어대 내생에 다시 나더라도 / 멀리 가지나 마오. -아내는 남자로 태어나고 싶다한다 전문 옮김
물안개 피는 아침, 한 폭의 수채화 같은 풍경을 마주하고 가슴속 묻어 둔 추억속 책갈피를 떠 올린다. 다녀온 사람이 말하길 남쪽 창문을 열고 새벽을 맞이하면 임하호 물안개는 기다렸다는 듯 열려진 창으로 진격해 삽시간에 포위해 버린다며 자랑을 하지만 아직 몇 번의 여행을 통해 만난 지례예술촌에서 하룻밤 허리끈 풀지 못했었다.
혹시 아직도 그곳 지례예술촌 지촌종택을 지키는 시집속의 그 아내는 남자로 태어나고 싶을까? 갑작스런 생각이 스쳐가면서 지례예술촌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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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몰을 피해 이주한 건물들
산중별촌 지례예술촌으로 향하는 길은 멀고도 험하다. 임하호에서 수곡교를 지나 박곡휴게소를 지나 수곡용계로를 따라 아기산(589m)으로 오르기 시작한다. 높지 않지만 산길은 바쁜 마음을 붙들고 늘어진다. 꼬부랑 능선길이 연이어 이어진다. 호랑이 한 마리 툭 튀어나와 “떡 하나 주면 안 잡아먹지” 해도 고개를 끄떡일 만큼 산중으로 이끈다. 굽이굽이 따라가다 막다른 길목에 도착하면 그곳에 지례예술촌이다. 반갑다 무엇을 보여주려 이 깊은 산중으로 이끌었는지 궁금증을 해소하기 위해 지례예술촌의 중심인 지촌종택으로 들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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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년 7월 산중턱에 급조되어 건물이 옮겨놓다보니 담장의 경계가 모호하다. 멋모르고 살펴보면 99칸의 대저택으로 생각들만큼 붙어 있지만 정작 담벼락 하나하나 쪽문을 열고 들어서면 전혀 다른 성격의 건물이 하나의 구역에 갇혀 있다. 수몰되지 않은 옛 마을이라면 생활하면서 자연스럽게 생겨난 전통의 미적 감각이 잘 조화를 이룬, 한옥 구조에서 느낄 수 있는 동선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오늘날 모습보다 더욱더 친근하게 다가왔을 것이다.
옮겨진 건물을 통해 뜻밖의 풍경이 바로 임하호가 그려내는 모습이다. 고너적한 분위기에 감전된 듯 자연 속을 여유롭게 거닐다 보면 느림의 미학을 통해 몸과 마음이 정화되는 곳이 바로 오늘의 여행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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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숙종 당시 대사성 관직을 지낸 지촌 김방걸(1623~1695)과 자손이 340여 년간 마을을 형성하여 지낸 곳으로 조선 현종 4년(1663) 종택을 비롯하여 제청, 서당 등 10여동 125칸 건물을 지었다 전한다. 58세 남인세력이 물러나던 경신출척을 당해 지례로 내려와 지내다 우암 송시열 타도 상소를 올려 다시 기사환국 하여 조정에 나갔지만 남인이 실권을 장악하는 갑술옥사로 인해 전라도 동북에 유배되어 73세로 생을 마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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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촌종택에서 늙은 참나무 명찰을 확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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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촌종택 사랑채 앞으로 행랑채와 마굿간 사이로 솟을대문을 내 놓았다. 붓으로 그려낸 듯한 한 폭의 동양화를 걸어 놓은 듯한 대문안과 바깥의 공간은 현대와 과거로 통하는 신비의 문인가 싶을 만큼 전혀 다른 그림을 그려 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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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촌종택은 곧 의성김씨의 종택으로 1663년 안채는 정면 5칸, 측면 5칸 반듯한 네모형에 팔작지붕을 올리고 큰 사랑방에는 세속과 멀리하고자하는 당시의 심정을 담은 '무언재(無言齊) 글씨의 현판이 걸려 있으며, 대문 옆 오랜 세월 종가의 맛을 간직했던 장독 속에 무엇이 들었나 귀를 가까이하고 보니 햇살에 익어가는 우주의 숨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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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44호 지촌종택 동사랑방 마루 앞에 한문으로 “遊於藝(유어예)”를 새겨 놓았다. 논어에서 “생활의 최고 경지는 예술에 노는 것”이란 의미로 이곳 지례예술촌의 지향하고자 하는 의미를 가장 함축적으로 담아내고 있는 것이다. 종택고가 앞에 세월의 흔적이 묻어나는 평상에는 메마른 침묵으로 햇살에 저항하는 가을 수확물이 널려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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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행하는 마음으로 건물을 넘나들며
지례예술촌의 물안개는 사실 낭만이 아니다. 고향을 등질 수 없던 실향민의 아픔을 어루만져 주는 향수는 아닐까 싶다. 지례마을은 지금의 위치로부터 300m 더 내려가야 한다. 350년간 집성촌을 이룬 마을이 수몰될 위기에 처하자 건물을 살려내기 위한 필사의 노력을 통해 문화재로 지정을 요청하였고 문화재청은 의성김씨 종택, 서당, 제청, 사당, 등 목조가옥 10동을 산중턱으로 이전하였고 오늘날 임하호를 조망하고 있는 옛 지례마을의 아픔이자 전통이자 박물관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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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택에서 또 하나의 건물 속 건물로 독립된 별묘가 있다. 홍선대원군이 쓴 '하남(河南)“ 현판이 걸려 있는 별묘는 뭐하는 공간일까? 별묘는 “예전에, 왕실에서 종묘에 들어갈 수 없는 사천의 신주를 모시는 사당을 이르던 말”이라고 어학사전에서 말하고 있다. 즉, 나라에 큰 공을 세워 업적을 후대에 기리기 위해 3대만 지내는 보통 제사를 4대를 넘겨 지내는 경우를 두고 불천위라 하며, 불천위를 모시는 곳이 바로 별묘로 알고 있지만 지례예술촌 숙박 중에서 가장 인기 있는 온돌방으로 사용되고 있다. 별묘에서는 남쪽 창문을 통해 아침 물안개를 볼 수 있는 전망 때문이다. 그러면 조상의 위패는 어디에 모시는 걸까 살펴보니 바로 지촌제청(정곡강당)아래 작은 건물이 바로 사당으로 위패를 봉안하고 제사를 지내는 곳이며, 제사가 있는 날에만 일반인이 관람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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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례예술촌의 지산서당
글 읽는 아이들의 또랑또랑한 목소리는 들리지 않지만 금강송을 사용하여 만든 특별한 서당으로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49호 지산서당은 지촌종택과 별묘 사이로 난 문으로 들어서면 자리 잡고 있다. 국내 서당 건물로는 가장 큰 규모로 70명을 동시 교육할 수 있다고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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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촌제청(정곡강당)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46호로 가장 높은 곳에 자리하고 있다. 입구에 작은 도서관으로 적혀 있는 간판을 보고 지촌제청을 만나면 이게 뭔가 싶겠지만 그 속으로 들어가 보면 약 6천여 권의 책이 진열되어 있으며, 본래는 이곳의 주인이었던 김방걸 선생의 제사를 지내던 곳이자 강당으로 사용하였던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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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례예술촌은 아쉽지만 옛 지례마을이 아닌, 1985년 임하댐으로 인해 수몰지역으로 지정되자 14세 종손 원길씨가 종택과 제청, 서당을 1986~1989 약 3년에 걸쳐 오늘날 위치로 옮겨졌고 한국최초의 예술창작마을 지례예술촌을 열면서 한국적 정취를 체험하려는 사람들이 먼 길을 마다하지 않고 방문하는 300년 전통과 가풍이 전해지는 종가이며, 17개의 온돌방이 준비되어 있다. 고택체험 문의 054)822-25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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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 나오면서
임하호를 바라보며 홀로 있는 집 한 채를 만나고 들어서는 순간 예스러움에 빠져들며 마음이 정화를 시작한다. 작은 새소리조차 큰 소리로 다가오는 지례예술촌은 밤하늘 총총 빛나는 별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추천하고픈 여행지다. 문명과는 담을 쌓고 사는 아직은 과거의 흔적이 전혀 낯설지 않은 여행지이자 고택체험으로 좋은 곳이다.
지례예술촌이 전혀 현대와 담 쌓고 사는 곳은 아니다. 올레 근거리 무선망이 터진다. 외딴 산속 한옥 마룻바닥에서 별 올려다보며 인터넷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댐건설로 수장되어 사라져 버릴 뻔 하였던 과거를 현대와 상생을 하는 몫을 하고 있는 셈이다.
안동시청에서 지례예술촌까지 31km, 청송군청에서 지례예술촌까지 33km 거리로 큰맘 먹고 나서지 않으면 찾아가기 힘든 곳이기도 하다. 임하호 임동교 앞 20번국도 갈림길에서 8.5km 산길로 접어드는데 자칫 바람 불면 낙석의 위험과 날이 추워지면 그늘진 길은 빙판길로 변하는 위험한 길이기도 하다.
용계의 은행나무
지례예술촌에서 안동 길안방향으로 약 10km 내려서면 약 700년 된 은행나무가 서 있다. 용계의 은행나무로 천연기념물 제175호이다. 나무의 주인은 조선 선조 당시 훈련대장이던 송암 탁순창 선생이 임진왜란 후 낙향하여 심었다 전하는데 이 역시 수몰지역에 뿌리내린 터라 나무를 두고 고민하다 그 자리에서 흙을 15m 높이로 쌓아 올리는 독특한 공법으로 무려 3년 5개월 만에 본래의 위치에서 높이만 올라온 상태로 보존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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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례예술촌에서 하루 쉬어가는 길목은 고향을 잃은 수몰민의 애환을 딛고 가는 길이다. 임하호 깊숙살 속살을 더듬고 보면 그곳이 지레예술촌으로 먼 곳에서 찾아온 손님을 위해 제법 큰 개 한마리가 먼저 뛰어와 반겨준다. 겨울이면 지례예술촌은 정적속으로 빠져든다. 발 한걸음 내딛는 소리조차 진동으로 전해져 오는 지례예술촌에서 겨울밤을 군불지펴보면 어떨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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