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최고의 오래된 절집 “장안사”
전설의 “척판암”
장안사에서 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장안사를 들른 후 산길을 따라 백련암을 거쳐 척판암으로, 그리고 척판암 산신각에 오른 후 다시 도로를 따라 내려서는 여행을 시작한다.
▲ 주차장에서 바라본 장안사 계곡 풍경
▲ 장안사 입구 삼나무 쉼터, 뒷편으로 대밭 숲길이 이어져 있고 중간에 부도밭이 있다.
▲ 장안사 일주문 역활을 하고 있는 종루
2층으로 된 종루 아래로 들어선다. 종루 아래 좌, 우 나무판을 조각하여 대형액자처럼 만든 목각탱으로, 옥빛을 띤 사천왕사가 지키고 있다. 2층 종루이자 절집으로 들어서는 첫 관문 일주문 역할까지 하고 있다. 절집으로 들어서면 독특한 모습의 단풍나무와 베를 만지면 득남한다는 포대화상, 정면으로 진신사리 7과를 모신 삼층석탑과 그 뒤편으로 대웅전 그리고 오른편으로 불광전, 해동전, 응진전, 산신각이 자리한다. 왼편으로는 명부전과 극락전이 배치되어 있다.
▲ 종루를 지나면 정면에 대웅전이 보인다. | ▲ 독특한 옥빛을 띠고 있는 사천왕사 |
▲ 약수물이 나오는 앞에 포대화상이 자리잡고 있다.
첫 대면은 절집이 다소 답답할 만큼 공간이 협소한 느낌이 든다. 삼층석탑의 위용 때문인지 아니면 처음부터 경남 고성군 옥천사처럼 말 타고 들어오는 관리를 출입을 막기 위해 절집의 공간을 좁게 하였는지 알 수 없지만 종루를 닫아 버리면 외부와는 차단되는 조용한 산사이다.
▲ 대웅전에서 발견된 묵서로 인하여 부산에서 가장 오래된 다포식 지붕을 올린 대웅전으로 확인되었다.
신라가 삼국을 통일 한 후 국태민안을 염원하고자 전국에 3곳 사찰을 만드는데 강원도 금강산 장안사, 부산 기장 불광산 장안사, 경북 예천 비룡산 장안사라는 이야기가 있지만 각자 사찰의 창건시기가 달라 정확성이 뒤떨어진다. 원효대사의 불법 수호 사찰로 알려진 기장 장안사는 신라 문무왕 13년(673) 원효대사가 창건하여 쌍계사라 부르다 애장왕(809) 이후 장안사로 고쳐 불렀으며, 임진왜란으로 소실된 후 조선 인조 8년(1630) 의월대사와 인조 16년(1638) 태의대사가 중창하였다. 2009년 부산대학교에서 현장조사를 실시하던 중 천장 반자에서 4건의 묵서명이 확인되면서 대웅전을 보는 시선이 달라졌다. 효종8년(1657) 중창 이후 큰 수리보수 없이 오늘에 이르는 고찰로 확인되면서 장안사 대웅전은 보물1771호로 지정되었다.
▲ 오랜세월을 잘 버티고 있는 대웅전과 늘씬한 팔작지붕을 한 대웅전은 보물 제1771호이다.
대웅전 색체가 낡아 보인다. 벗겨지고 퇴색된 불교채색이 덧없는 세월을 말해주고 있다. 천연광물을 이용하여 절집에 채색하는데 조사결과 놀랍게도 처음 채색된 그 색감이 단 한 번의 덧칠 채색이 없다고 한다. 얼마 전 복원한 숭례문 단청이 불과 몇 달도 안 돼 벗겨진 것에 비하면 우리 선조의 단청기법에 감탄사 할 뿐이다. 오랜 세월의 흔적을 간직한 대웅전은 정면 3칸, 측면 3칸 팔작지붕을 올린 목조건축물로 효종 8년(1657) 중창하는 과정에 인부 165명이 동원되어 중건하였다는 기록이 있으며, 당국화로 추정되는 꽃살문이 독특하게 장식되어 있다.
▲ 대웅전 꽃문살이 독특한 모습을 하고 있다.
▲ 대웅전 처마가 날렵해 보인다.
대웅전에 석조삼세불좌상을 모시고 있다. 1659년 만든 희귀한 불상으로 17세기 후반 조각승 녹원의 작품으로 녹원은 주로 나무 재료를 이용하여 불상을 만들었는데 이곳 대웅전은 유일하게 석재로 만든 불상이다. 중심불로 석가여래좌상을 모시고 협시불로 왼쪽은 약사여래좌상, 오른쪽은 아미타여래좌상을 두고 있다. 특히 국내 불상에서는 볼 수 없는 석가불의 왼손과 약사불, 아미타불의 두 손은 나무로 제작하였다.
▲ 응진전(부산광역시 유형문화재 제107호)는 나한을 모신 나한전이다. 정면 3칸, 측면 2칸 맞배집으로 1684년 조성된 석조석가
여래좌상, 제화갈라보살, 미륵보살을 모시고 16나한상과 사자상, 천부상, 인왕상을 모시고 있다.
▲ 웅진전 단청이 화려하다.
▲ 명부전(부산광역시 유형문화재 제107호)은 죽은 사람의 넋을 인도하는 곳으로 정면 3칸, 측면 2칸의 맞배집이다. 명부전에는
부산광역시지정 유형문화재 제86호 장안사 명부전 석조지장시왕상과 부산광역시지정 유형문화재 제89호 장안사 명부전 지장
보살도가 있다.
▲ 명부전 옆에 언제 적 만든 것인지 알 수 없는 노주가 외롭게 서 있다.
▲ 극락전에 누워있는 와불을 모시고 있다. 와불 복장에 부처님 진신사리 3과를 봉안하고 있다. 진신사리는 미얀마 고승 우뚜리야
샤야도우스님이 기증한 것이다.
▲ 극락전 누워있는 와불
▲ 삼층석탑에는 진신사리 7과를 봉안하고 있다.
절집은 공간이 꽉 차도록 건물과 건물을 잇고 하나의 동선으로 유도하고 있다. 대웅전 뒤편 넓고 넓은 공간에 무엇이 있었는지 궁금하였지만 사철 푸른 대나무와 산새만 날아들 뿐이고 지장보살을 찾는 사람들의 발길은 끊이지를 않는다.
▲ 독특하게 자라는 장안사 단풍나무
▲ 주차장에서 종루로 들어서는 입구에 최근 지장보살입상과 불탑을 세워 놓았다.
불교유적으로 대웅전(보물 제1771호) 및 장안사 응진전 석조석가삼존십육나한상(부산광역시지정문화재 제85호), 장안사 명부전 석조지장시왕상(부산광역시지정문화재 제86호), 장안사 대웅전 석가영산회상도(부산광역시지정문화재 제87호), 장안사 응진전 석가영산회상도(부산광역시지정문화재 제88호), 장안사 명부전 지장보살도(부산광역시지정문화재 제 89호), 장안사 대웅전 석조삼세불좌상(부산광역시지정문화재 제 94호)), 장안사 명부전(부산광역시지정문화재 제 106호), 장안사 응진전(부산광역시지정문화재 제107호)와 장안사 연(부산광역시 문화재자료 제5호) 등이 있다.
척판암으로 가는 길
▲ 척판암으로 가는 길 안내판에서 등산로를 확인하고 있다.
장안사를 나와 산길로 접어든다. 천년도량 척판암으로 오르는 산길 아름드리 활엽수가 어우러져 숲을 이루는데 그 중에서 굴참나무와 국내 최대 규모 개서어나무(서어나무) 군락지를 통과한다. 높이가 20m 로 고목이 되어 일부는 자연으로 되돌아가는 과정을 거치고 있다. 좁은 산길을 오르다 보면 갈림길을 만나게 된다. 이정표를 따라 오른편으로 접어들면 척판암이 열린다.
▲ 척판암은 산길과 도로를 따라 오를 수 있다. 대부분 산길로 올라간 후 도로를 따라 내려온다.
▲ 산길을 오르는 동안 개서어나무와 굴참나누 외 다양한 활엽수가 시선을 끈다.
▲ 척판암은 좁은 공간을 가로형으로 절집이 형성되어 있다.
척판암은 신라 문무대왕 13년 원효스님이 장안사와 함께 창건한 사찰로 창건 당시 담운사로 불리다 원효대사는 당나라 종남산에 있는 태화사에 큰 장맛비로 산사태가 일어나 천명대중이 매몰될 것을 신통한 혜안으로 살피고는 신라의 원효가 판자를 던져 대중을 구한다는 척반구중 현판을 태화사로 날려 보내자 태화사 천명대중은 공중에 있는 현판을 보려고 법당을 나오는 순간 태화사 뒷산이 붕괴되어 매몰되고 천명대중은 목숨을 건지게 되었다. 그 후 목숨을 구한 천명대중이 신라 척판암으로 찾아와 원효스님의 제자가 되길 간청하니 천성산 주변에는 이들이 거처할 많은 암자가 생겨났는데 원효스님이 천명대중의 거처를 찾아 내원사 부근에 이르자 사신이 마중 나와 대둔사 터를 점지해 주었고 곧 그 터에 상, 중, 하 내원암을 짓고 89개의 암자를 세워 천명대중을 거주하도록 한 후 참선, 경전, 기도 중 자기에게 맞는 방법을 따라 암자를 택하게 하고 담운사는 척판암으로 불렀다 한다.
원효와 당나라 구전은 결코 예사로운 것이 아니다. 당시 당나라 고승은 원효를 불세출의 위인으로 칭송할 정도였으며. 원효가 사는 해동을 향해 세 번씩 절을 하며 해동성불로 불렀다. 당나라에 관한 이야기는 이 뿐만 아니다. 어느 날 당나라 성선사에 화재가 발생하자 경주 고선사에 머물던 원효스님이 마당의 못에 있던 물을 퍼 서쪽으로 부었더니 성산사 화재가 진압되었고 그 인연으로 고선사에는 원효 사후 서당화상비를 세웠다고 한다.
▲ 척판암 본전건물과 그 앞으로 절벽이 펼쳐져 있다.
지금의 척판암은 그야말로 산 위에 올려진 판잣집을 연상하게 할 정도로 협소한 산 중턱에 겨우 터 잡고 있으며, 구전에 의하면 제법 큰 고찰의 흔적이 있어야 하지만 어딜 봐도 절집이 있을 공간이 없어 암자수준에 지나지 않아 장안사와 함께 창건된 사찰인지 장안사에 딸린 부속암자였는지, 단독 사찰인지는 알 수 없다.
▲ 소형급 불상을 모시고 있다.
절집은 벼랑 위 아슬아슬하게 있다. 절벽에 뿌리내린 느티나무에서 오랜 세월의 흔적과 위엄을 엿보며 법당을 끼웃거려 본다. 척판암 석조여래좌상(부산시문화재자료 제41호)는 척판암 주불전의 본존불로 항마촉지인 자세를 하며, 높이가 37.5cm로 돌을 이용해 깎아 만든 조선후기 소형급 불상으로 불전에 모시고 있다.
▲ 척판암으로 들어가는 문
▲ 용왕당은 경내에 모시고 있지만 산신당은 이보다 더 먼 거리에 있다.
척판암은 절집이 위치한 공간 자체가 협소하여 절집 마당이 없다 하여도 무방할 정도로 사람 한명 넉넉하게 지나갈 정도로 좁다보니 대웅전 건물이라 하여 넉넉지 못하여 승방과 공양간이 한 지붕아래 있는 독특한 구조를 하고 있다. 법당에는 원효스님의 진영과 조선시대 조성한 아미타여래좌상이 본존불이며 협시불로 관음보살상과 지장보살상을 두고 있다.
▲ 법당을 지나 한 사람 겨우 돌아가는 공간을 돌아가면 척판암 삼층석탑이 있다. 삼층석탑은 1972년 조성한 것으로 재일동포가
일본에서 불상을 구입하였는데 그 속에서 53과 진신사리가 나와 자신의 고향 제주 관음사에 봉안하고 일부를 이곳 삼층석탑에
모셨다.
▲ 한가지 소원은 꼭 이루어 진다는 산신각과 독성상각
척판암을 빠져 나오면 산신각이란 이정표가 산길로 안내한다. 절집으로 떨어져 있는 산신각이 궁금하여 가파른 길을 따라 오르니 독특하게 깍아지런 암벽 위 공중건물을 짓듯 허공에 산신각을 만들고 유리관 안에 산신상과 독성각이 있다. 왜 이 먼 위치에 산신각을 세웠는지 갑자기 그 속내가 궁금하였지만 이곳에서 소원을 빌면 소원 성치도가 놓다하니 소원을 빌어본다.
▲ 산신각 가는 길에 내려다 본 척판암
▲ 척판암을 빠져나와 도로를 따라 내려선다.
산길로 오르면서 개서어나무를 보았다면 이번에는 척판암으로 오르는 도로를 따라 내려서면서 개서어나무와 절묘하게 만들어진 도로의 환상적인 궁합에 입이 딱 벌어진다. 꾸불꾸불 이어지는 도로는 차 한 대 겨우 숨을 헐떡이며 올라와야 할 만큼 경사와 곡선라인이 연이어 이어져 있다.
▲ 백련암은 초입에 있지만 스쳐가는 곳이였다.
산길을 내려오면 또 하나의 절집이 보인다. 백련사이다. 백련사 아래 공터는 척판암으로 가는 사람들이 주차를 하는 주차공간이 있고 오르는 길에 대나무가 숲을 이루고 있었는데 이번 방문에 대나무는 전부 사라지고 그동안 보이지 않던 백련사 절집 건물이 보인다. 백련사는 절집 분위기가 아니라서 잘 찾지 않는 곳이지만 다음 방문할 때 한번 들러 보는 시간을 가질 것을 약속하고 산길을 내려 주차장으로 향한다.
즐거운 여행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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