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의 기운이 시작될 무렵 아침부터 추적추적 내리던 빗줄기가 갑자기 싸락눈으로 변하더니 그것도 잠시 함박눈이 펑펑 뿌려진다. 방문을 열고 내리는 눈을 바라보며 길을 떠나야 될지 몰라 망설이자 민박집 할머니는 오늘까지 비 온다고 하였으니 그냥 하루 쉬어라며 만류하신다. 그리하여 곧 보물로 승격되는 가까운 만취당으로 향했다.
▲ 1월에 공사완료라는 안내가 무색한 만취당 건물은 수리중
최근 문화재청이 경북 의성군 점곡면에 위치한 만취당을 보물로 지정 예고를 하였다. 반갑다는 말보다 주변 정비가 어찌되었는지 갑자기 궁금하여 만취당이 있는 의성군 점곡면 사촌마을 내 만취당을 찾아 나섰다. 보물 지정 이전에 너무 방치되어 훼손의 정도가 당시 경상북도 지방유형문화재 제169호 였지만 관리가 전혀 이루어지지 않아 무척 아쉬웠는데 지금이라도 보물로 격상되어 더 이상의 훼손을 막고 후세에 남겨 줄 수 있도록 우리 모두가 관심을 가지기를 기대해 본다.
▲ 만취당으로 들어가는 출입문
경북 의성군 점곡면에서 고운사 가는 길목 사촌가로숲 못미쳐 만나는 마을이 사촌마을이다. 천연기념물 제405호로 지정된 사촌가로숲은 지금 거의 숲 기능을 잃어 간다. 오랜세월 살아온 고목이 된 나무는 메말라 버린 계곡 주변에 뿌리 내리고 겨우 명맥만 유지하고 있을 뿐이다. 고려 말 안동 김씨 시조인 김자첨이 안동에서 사촌으로 이사를 오면서 만든 방풍림으로 300-600년 되는 상수리나무, 느티나무, 팽나무 등 약 500여주가 1km 숲을 이루고 1542년 유성룡의 모친이 친정인 사촌에 다니러 왔다 이 숲에서 유성룡을 출산했다는 전설이 전해지는 곳이지만 지금은 숲길이 끊어져 있으며, 주변은 사과과수원으로 숲의 형체만 유지하고 있다.
▲ 사촌가로숲 여름 풍경
사촌마을은 삼정승이 나는 명당 터로 신라시대 나정승 이후 두 명의 정승이 더 생길 것이라 믿었는데 유성룡의 어머니는 태몽으로 용꿈을 꾸고 앞으로 크게 될 아이라 믿으며 친정인 사촌에서 아이를 낳을 결심을 하고 찾았지만 친정아버지는 출가한 딸에게 명당터 기운을 내줄 수 없다며 내치자 어쩔 수 없이 다시 시댁으로 되돌아가는 도중 사촌가로숲에서 유성룡을 출산했다는 곳으로 사촌마을 담장길을 따라 거닐어 본다.
사촌마을은 지명은 1392년 마을 입향조였던 고려 중기 충렬공 김방경의 후예 김자첨 선생이 안동 회곡에서 이곳에 터 잡을 당시 중국 사진촌을 의미하는 사촌으로 부르면서 시작되었다.
금봉지에서 흘러내린 물이 주변 마을을 거쳐 사촌마을 앞 계곡으로 흘러드는데 바로 미천이다. 오늘날 점곡2교에서 바라보면 계곡 위로 정자를 하나 만나는데 바로 영귀정으로 조선 연산군 7년(1501) 진사시에 합격한 시인 김광수(1468-1563)가 만든 정자가 오랜세월 방치된 모습으로 미천과 사촌마을을 내려다 보며 있다.
▲ 수리를 위해 내려져 있는 기왓장
사촌마을 주변에는 사과과수원이 형성되어 있다. 과수원과 마을 경계에 79번 왕복 2차선 국도가 지나간다. 마을이 끝나는 지점 도로변에 오늘의 여행지 만취당이 있다. 만취당이라하여 술을 마시는 곳으로 착각하면 곤란하다. 만취는 겨울에는 변하지 않는 푸른이란 의미로 송나라 재상이던 범질이 더디게 자라는 시냇가 소나무는 울창하게 늣게까지 푸르럼을 간직한다는 (遲遲澗畔松 鬱鬱含晩翠 지지간반송 울울함만취) 글귀에서 따 온 말로 강직한 선비정신을 엿 볼 수 있다.
▲ 수리를 위해 공사하기 전 만취당 전경
마을로 들어서면 사가로서 우리나라 최고 목조건물로 알려진 정면 4칸, 측면 2칸의 만취당이 자리 잡고 있다. 만취당은 1983년 경북유형문화재 제169호(현재 보물급으로 격상 예고)로 지정된 곳으로 만취당은 선조 15년(1582) 퇴계 이황의 제자 만취당 김사원(晩翠堂 金士元, 1539∼1601)이 후진 양성을 위해 착공하여 1584년 완공 후 영조 3년(1727) 동쪽방향에 2칸 증축하였으며, 영조 40년(1764) 서쪽으로 온돌방 한 칸을 만들면서 시대를 달리하여 오늘날 'T'자 형태의 건물이 되었으며, 현판은 당대 최고의 문필가였던 한석봉 친필로 알려져 있으며, 서애 유성룡을 비롯 시문이 남아 있다. 정확한 사실여부는 알 수 없지만 만취당 건물 기둥은 신라시대 사찰 목재를 옮겨와 지은 것이라는 설이 있다. 관리는 안동김씨 만취당파 문중에서하고 있다.
▲ 사촌리 향나무
만취당 뒷켠 쪽문을 열고 나서보면 사촌리향나무로 불리는 나무가 있다. 만취당 뒷편에 송은 김광수 선생이 직접 심었다는 높이 10m 향나무로 경북기념물 제107호이며, 500년 세월을 한 자리에서 버티어 온 나무이다.
▲ 사촌리 향나무의 위엄
▲ 향나무
▲ 여름에 찾은 사촌마을 전경
사촌마을은 고색창연한 기와지붕을 올린 고택마을을 이루었지만 임진왜란 당시 명성황후 시해사건(1895)이 일어나자 사촌마을 의병장 운산 김상종, 좌산 김수옥이 중심이되어 전국 의병이 일어나는 병신창의(1896년)가 일어나자 왜군은 보복으로 마을을 불질렀다. 한ㅜ동란에서도 큰 피해를 입었는데 당시 인민군과 미 해병대가 점곡지서 탈환을 위해 1주일간 전투하는 과정에 미군 장교가 인민군에게 사살되자 미군이 마을에 불을 질러버렸던 것이다. 만취당이 화마로부터 살아난 것은 만취당에 우물이 있어 불길을 그나마 막을 수 있었던 것이다.
▲ 마을 중심 도로변에 있는 사천마을자료전시관
사촌마을 자료전시관에 들어서면 충효예절을 강조하는 코너가 강조되어 있는데 이것은 사촌마을에 살던 송은 선생이 만든 경심잠 십조라는 것으로 첫째 부모에게 효도할 것. 둘째 나라에 충성할 것. 셋째 제사를 잘 받들 것. 넷째 집을 바르게 다스릴 것. 다섯째 동기간에 화목할 것. 여섯째 죄를 짓지 말 것. 일곱째 남을 헐뜯지 말 것. 여덟째, 여색에 빠지지 말 것. 아홉째, 친구를 잘 사귈 것. 열째 분수를 지킬 것을 강조 한 것이다.
즐거운 여행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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