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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수원] 화성행궁에서 정조대왕을 엿보다

허영꺼멍 2014. 3. 17. 14:43

 

 

수원 화성행궁

 

수원 화성행궁으로 향했다. 주차를 하니 주차비가 3시간 기준이다. 보통 여행지의 경우는 주차에 관하여 시간을 설정하지 않고 당일로 하는 것과 달리 3시간이라니 마음이 조급해 진다. 성벽을 따라 이동하는데 3시간이 부족할 것 같아 화성열차를 타고 조선시대 건축의 백미라 부르는 화성과 화성행궁을 찾아 여행을 하기로 했다.

 

▲ 화성열차. 부산 태종대처럼 순환식으로 돌면서 타고 내리는 것이 아니라 태우면 그냥 쭈욱~!

 

화성행궁 열차표를 끊고 궁금하여 물어본다. 중요 성문에서 정차를 하는지? 중간 중간 내리고 탈 수 있는지가 궁금했지만 질문에 대한 답은 편도표 이므로 되돌아 올때 다시 매표하라는 말만 냉큼하고는 딴짓이다. 이렇게 큰 여행지에서 당연하게 중요한 볼꺼리에 정차를 할 것이라는 생각이 빗나가기 시작했다. 성벽을 따라 그냥 종점까지 하염없이 달린다. 중간 중간 설명을 짧게 할 뿐 왜 이 기차를 타고 여행하는지 후회하기 시작했지만 어쩔 도리가 없었다. 그렇게 기차는 화성 담벼락을 따라 이동 후 화성행궁 언덕 위 내려 놓았다.

 

인터넷을 뒤져 화성행궁을 마지막 목적지로 계획을 하였는데 첫 여행 순서부터 뒤죽박죽이 되어 버렸다. 화성행궁 열차 종점에서 내려 화성행궁으로 내려섰다. 열차의 종착역이 차라리 화성행궁 입구라면 또 모를까. 주차장을 가로질러 매표소를 찾아 걷는다.

 

▲ 화성행궁 앞 공터와 건너편으로 종각이 보인다.

 

▲ 정조가 부친 사도세자의 릉을 옮기고 수원으로 행차하는 모습

 

▲ 종각

 

 

 

▲ 매표소 앞 전경

 

화성행궁에서 다시 매표하여 들어선다. 1996년 복원공사를 시작으로 20031단계 완료 후 일반인에게 공개된 화성행궁은 조선 건축의 백미로 현재 사적 제478호이다. 정조 13(1789) 팔달산 동쪽 기슭에 세워진 화성행궁은 본래 수원부 관아의 행궁으로 사용되다 화성을 축성하면서 행궁이 확대 된 것으로 부친인 사도세자의 묘소를 찾아오면 행궁에서 머물며 묘소를 참배했다고 한다.

 ▲ 화성행궁으로 향하는 길

 

▲ 화성행궁의 정문 신풍루

 

건립당시 화성행궁은 600여 칸의 정궁형태를 갖추었지만 일제 강점기 낙남헌을 제외하고 훼손해 버렸고 1996년부터 복원을 위해 복원추진위원회가 구성되었다.

 

 ▲ 화성행궁 신풍루를 열고 들어서면 오른편에 있는 소원비는 느티나무

 

화성행궁 느티나무는 600년 이상된 노거수로 수원을 지켜온 신령스러운 나무로 보호받고 있다. 영목, 신목, 규목 등으로 불리는 느티나무는 예로부터 잎이나 가지를 꺾으면 목신의 노여움을 사 어려움이 닥친다고 하였다. 또한 소원지에 소원을 적어 걸면 소원이 이루어 진다는 전설이 있다.

▲ 장금이 사진이 있다. 대장금 촬영

 ▲ 화성행궁 중심건물인 봉수당

 ▲ 건물에 올려진 잡상

 

 ▲ 정조가 앉았을 침상

 

봉수당은 화성행궁에서 가장 중요한 건물로 정조가 수원행차시 머물렀던 곳이다. 평상시에는 수원유수부의 동헌으로 유수가 집무하던 곳이다. 현 건물은 1789년 9월 25일 완공되었고, 1794년 중축하였으나 일제강점기 훼손되어 1997년 복원하였다.

 

 

 ▲ 화령전

 

 

 ▲ 화령전에서 운한각으로 들어가는 옆문

 ▲ 정조 초상화를 봉안하고 있는 운한각

 

 ▲ 운한각은 최령전 정전으로 정조의 초상화를 봉인한 건물이다.

 

운한은 임금이 가뭄을 걱정하여 하늘에 기우제를 올릴 떄 불려 졌다는 '시경'에서 따 왔다. 앞에는 제사 떄 악공들이 음악을 연주 할 수 있는 월대가 있고, 새 개의 계단이 놓여 있는데 가운데 계단은 혼백만이 사용하는 계단이다. 1801년에 만들어진 조선후기의 가장 대표적인 건물이다.

 

 ▲ 정조 초상화

 

 ▲ 운한각 앞

 ▲ 운한각 처마

 

 ▲ 우물터 제정

 

제정은 화령전의 제례에 사용될 정화수를 또는 우물로 어정이라고 한다. 회령전 제정은 정방향의 형태로 각 방향에 14개(4면 56개)의 장대석을 치밀하게 쌓아 올렸다. 높이는 5.5m이고 바닥에서 물이 고인 높이는 약 4m 이다.

 

 

 ▲ 우물 물길 배수로가 건물  담벼락으로 향하고 있다.

 

 ▲ 낙남헌

 

화성행궁 건물 중에서 유일하게 전소하지 않은 건물이다. 각종 행사를 진행할 수 있도록 공간을 알맞게 배치한 행사용 건물이다. 원래 이 자리에 있었던 득중정을 노래당 옆으로 이전하고 그 터를 넓혀서 1794년 완공하였으며, 지금은 기념물 제65호로 지정되어 있다.

 

 

 

 

 

 

 ▲ 유여택

 

유여택은 평상시에는 화성 유수가 거처하는 곳으로 쓰이다가, 임금이 행차하게 되면 잠시 머무르며 신하를 접견하는 곳으로 이용되던 건물이다. 1795년 행차 당시 정조는 이 건물에서 각종 행사에 대한 보고를 받고 하교를 내렸다 한다. 본래 이 건물은 1790년에 건립하고 온악헌이라 하였다가 1796년 증축하면서 유어택으로 이름을 바꿨다. 오늘날 건물은 1998년 12월 복원한 것이다.

 

 ▲ 위에서 내려다 본 화성행궁

 

▲ 화성행궁 전경

 

화성행궁으로 진입하면 화성행궁의 정문 신풍루와 좌의문, 중앙문을 거쳐 정조대왕의 어머니 혜경궁 홍씨 회갑연회를 베풀었던 봉수당으로 향한다. 봉수당에서 오른편으로 혜경궁 홍씨 회갑연 당시 과거시험을 치렀던 낙남헌이 있으며, 낙남헌에는 정조대왕이 왕위에서 물러난 후 여생을 즐기기 위해 만든 노래당이 있다.

 

 

 

 

 

1편 화성행궁

2편은 화성이야기 화성을 걷다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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