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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경주] 무장사지 그리고 이스탄블 2004 경주

허영꺼멍 2014. 9. 16. 18:49

 

 

 

동대봉산(660m) 무장봉(624m)

무장사지(鍪藏寺址)

10월 중순 ~ 11월 초순 억새 여행길

 

2005년 가을쯤으로 기억된다. 경주 전역 문화재를 찾아 여행을 하면서 무장사지에 보물급 문화재가 있다는 것을 알고 몇 번의 수고를 하였지만 당시 이정표는커녕 주민도 정확한 위치를 몰라 주변을 헤매다 돌아오곤 하여 항상 머릿속에 숙제를 끝내지 못한 학생처럼 남아 있던 중 2008년 국립공원 구역으로 관리가 옮겨오면서 무장사지 가는 길이 정비되었고, 영남신문에 억새명산으로 부각되면서 무장사지 가는 길이 알려지기 시작하였지만 건강상 이유로 이리저리 미루다 오늘에야 무장사지를 향했다.

 

▲ 무장사지 초입 초가을 들판

 

억새가 피기에는 아직 이른 계절 녹음 짙은 암곡계곡으로 발걸음을 옮겨 본다. 경주 보문단지를 돌아 물레방앗광장 옆 천북남로 마을길을 따라 진입, 허브랜드공룡마을 갈림길에서 오른편 마을길을 따라 왕산마을 끝까지 들어가면 무장사지 주차장이 나온다. 보문단지 물레방아공원에서 무장사지 주차장까지 약 5.6km 구간으로 봄이면 경주의 숨겨진 벚꽃여행지이기도 하다.

 

▲ 주차장에서 암곡으로 향하는 작은 소로

 

▲ 무장사지 첫번쨰 갈림길에서 계곡을 건너는 오른쪽 길을 따라 이동한다.

 

▲ 계곡이 깊고 물길이 이어지는 곳이라 계곡 일부 구간은 나무데크 다리를 놓았다.

 

 

 

 

 

 

무장사지 주차장은 무료이다. 주차를 하고 덕동천 옆으로 이어지는 길을 따라 약 1.1km 걸어가면 본격적인 무장산으로 향하는 암곡입구에 서게 된다.

 

암곡이란 정상으로 향하는 무장산길이 깊어 어두운 산길이 이어져서 부르는 지명으로 암곡입구에서 무장사지 갈림길까지 약 2.4km이며, 무장봉까지 5.7km이다. 무장사지 갈림길에서 나무데크를 따라 100m 들어서면 무장사지이다.

 

삼국 통일 대업을 위한 치열한 전투 그리고 삼국통일 대업의 완성 후 전쟁 무기를 오늘날 암곡동 무장사지 근처 뭍어 버리면서 더 이상의 전쟁은 하지 않는 평화를 향해 나아갔다. 동대봉산(660m) 무장봉(624m)으로 향하는 길은 완만한 임도가 정상까지 이어지는 독특한 산행길이 열려 있다는 점이다. 1970년대 초 동양그룹이 무장산 정상 일원 약 45만평에 오리온 목장이 조성된 후 19805공 당시 재벌의 비업무용 토지 강제매각조치에 의해 매각된 후 1996년까지 목장으로 사용하다 문을 닫은 후 넓은 초지에 억새가 자리를 대신하면서 매년 가을이면 은빛 물결이 일렁이며 탐방객을 유혹하는 억새여행지로 부각되었다. 옛 목장길 덕분에 정상까지 돌아오는 약 8.5km 구간은 누구라도 쉽게 다녀올 수 있다.

 

 

 ▲무장사지 100m 앞 갈림길에서 만나는 나무데크 계단길

 

 

신라 문무왕은 삼국통일 대업을 완수한 후 더 이상 전쟁을 하지 않겠다는 의지로 자신의 병기를 무장산에 묻었다고 한다. 그리고 세월이 지나 무장산 깊은 골 안에 절을 짓고 무장사로 불렀다 한다. 38대 원성왕의 부친 효양이 숙부 파진찬을 기리기 위해 만든 사찰이며, 39대 원성왕 왕비 계화가 조성한 아미타불 봉안 내력이 담긴 비석과 석탑이 오늘날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신라 제38대 원성왕은 자신을 포함하여 아들과 딸까지 권력에 죽음이란 재물로 사라져야 했었다. 신라 38대 원성왕은 두 아들이 있었지만 왕위를 물려받지 못하고 죽자 장손자 혜충이 왕위를 물려받아 39대 소성왕이 되지만 15개월 만에 죽게 되자 왕비 계화는 슬픔에 빠진다. 왕비 계화는 소성왕의 극락왕생을 위해 사비를 털어 아미타불을 만들고 그 흔적으로 사적비를 남겨 두었다.

 

 

▲ 무장사지 삼층석탑 가는 길

 

소성왕에게 장남 청명과 체명 두 아들과 딸 장화가 있었지만 큰 아들 청명은 애장왕이 되었지만 삼촌 김언승에게 암살되어 죽는다. 둘째 아들 체명 역시 이때 죽게 되고 딸 장화도 어린 나이로 시집을 갔지만 남편이자 숙부였던 42대 흥덕왕 등극 후 2개월 만에 죽는 비극적인 가족사가 이어졌다. 그래서 그런지 무장사지에 들어서면 엄숙해 진다.

 

무장사 입구에 들어서면 무장사사적비 이수 및 귀부로 향하는 길과 무장사지 삼층석탑으로 향하는 길로 나누어진다. 언덕 위쪽에 귀비가 있으며, 계곡 가까이 석탑이 있으며 중간에는 절집이 존재하였을 상당한 평지가 2단 구조로 연결되어 있다. 탑은 겨우 탑돌이 할 만큼의 여유 공간을 두고 절벽 언덕 위 올려져 있다. 절집 구조로 보면 얼핏 탑의 위치가 이해하기 어렵다.

 

 

보물 제125호 무장사지 아미타불 조상 사적비

 

신라 원성왕의 아버지가 숙부를 추모하기 위해 무장사를 조성했다 하지만 오늘날 그 흔적으로 사적비와 삼층석탑 그리고 건물 초석 10여개와 기와편이 전부이지만 아미타불 조성 당시 내력을 적은 귀부와 이수가 남아 있어 그 내력을 전하는데 신라 제39대 소성왕의 왕비 계화황후는 왕이 떠나자 명복을 빌기 위해 아미타불을 봉안한 내력이 적혀있다. 비는 1760년 암곡촌에서 발견되었다가 잊힌 것을 1817년 추사 김정희가 다시 찾았고 현재는 국립중앙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한다. 무장사지 비는 복원된 것으로 독특하게 비좌 사면에 십이지신상을 조각해 놓았다.

 

▲ 무장사지 아미타불 조상 사적비

  

 

▲ 김정희가 다시 찾아 흔적을 남겨 놓았다.

 

안내글을 옮겨보면 무장사라는 이름은 신라 태종무열왕이 병기와 투구를 감추었기 때문에 붙여진 것이라고 삼국유사에 전한다. 비는 없어지고 비를 받쳤던 거북 모양의 받침돌 위에 얹었던 용 모양을 새긴 비의 머리만이 남아 있었으나 1915년 이 주변에서 비석의 조각이 발견되어 절 이름이 무장사엿던 것을 알게 되었다. 무장사비 귀부의 머리는 용 모양이며 두 마리 거북이의 등에 비를 받치던 자리 둘레에는 십이지신상을 조각한 것이 특이하다. 비의 머리에는 아미타불 ○○ 이라는 글자가 두 줄로 새겨져 있다. 비문은 마모가 심하여 내용을 파악하기는 어려우나 신라 소성왕의 왕비인 계화부인이 소성왕의 명복을 빌기 위해 아미타불상을 만들어 무장사에 모신 내력을 새긴 것이다. 비의 조각은 국립중앙박물관에 보관 되어 있으며, 이를 바탕으로 2011년에 비신을 복원하여 다시 세웠다.” 라고 안내하고 있다.

 

보물 제126호 무장사지 3층 석탑

 

무장사지를 두고 일연스님은 그윽한 골짜기가 산을 깎아선 듯하며 장소가 침침하고 깊숙하여 주위가 절로 적적하니 이야말로 마음을 휴식하고 도를 즐길 수 있는 신령스러운 장소다라 하였다. 오늘날 무장사지 삼층석탑 아래는 산 초입부터 이어지는 계곡 중에서 가장 깊은 협곡 벼랑 위 석탑을 올려 두었다.

 

▲ 무장사지 3층 석탑

 

높이 14.9m 삼층석탑은 되괴된 상태로 발견되어 1962년 일부를 보충하여 복원하였다. 탑은 통일신라석탑 양식을 계승한 9세기 석탑으로 추정하고 있다.

 

안내글을 옮겨보면 이 절터는 암곡동 깊은 골짜기에 위치하고 있으며, 여기에서 발견된 무장사 아미타불 조상사적비에 의해 무장사터임을 알게 되었다. 이 탑은 이중기단 위에 3층의 몸돌을 올렸다. 1층 기단에는 모서리 기둥과 2개의 안기둥을 조각하고 덮개돌을 올렸다. 2층 기단은 8개의 돌로 짜 맞춘 다음 각 면에 2개씩의 원형에 가까운 창 모양의 안상을 조각하여 모서리기둥과 안기둥에 새겨 넣었다. 1층 몸돌은 1개의 돌로 만들어 모서리기둥을 조각하였다. 1층 지붕돌 역시 1개의 돌로 만들었으며, 지붕돌 아래면의 받침은 5단이다. 2층도 1층과 같이 몸돌과 지붕돌을 각각 1개의 돌로 만들고 5단의 받침을 나타내었다. 무너진 채 깨어져 있던 것을 1963년에 일부 부재를 보충하여 다시 세웠다.” 라고 안내하고 있다.

 

 

▲ 무장사지를 떠나 억새군락지로 향하는 산길

 

무장사지를 나서면 도심 속에서 정체를 숨긴 소음들로부터 귀를 닫고 시원한 녹음 길에서 자연의 소리에 귀동냥을 한다. 아주 조그만 소리에도 그 출처를 밝히고 말겠다는 탐정처럼 소리가 나는 풀숲에 온 신경을 집중하다 보면 자연은 답을 구하고자하는 만큼 깨우쳐 준다. 산 속에서 홀로 게으름 부리며 느릿하게 걷는다 하여 산신령이 저속보행으로 범칙금 떼는 것도 아니지 않는가.

 

▲ 눈에 보이기 시작하는 옛 목장터

 

 

무장사지를 떠나 다시 산길을 오르면 암곡을 벗어나 햇살이 환하게 비추는 동대봉산 능선길을 따르게 된다. 무장봉까지 잇는 산길은 억새길로 10월 중순부터 11월 초까지 새로운 억새여행지로 부각되면서 수많은 탐방객이 찾는 길이다. 억새길은 정상 무장봉을 거쳐 은빛공간을 펼쳐 놓는데 목장이 철수하면서 평지에 억새가 군락지를 형성하게 된 것이다.

 

 

정상은 경북 포항시와 경주시의 경계이다. 경계를 넘어서면 포항 오어사로 향하는 능선이 이어지며, 하산을 되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계속 길을 따라 밤나무 숲을 지나 내려서면 암곡갈림길에서 다시 합류하게 되면서 5.3km 완만한 임도길과 3.1km 다소 가파른 탐방로 여행을 마치게 된다.

 

 

 

 

여행순서는 암곡입구에서 무장사지를 향해 오른 후 무장사지를 둘러 본 후 다시 억새밭으로 이어지는 임도를 따라 진행하면 마지막 공중화장실을 거쳐 오르면 억새밭이 연이어 이어지며 무장봉에 도착하게 된다. 무장봉에서 하산하는 길은 다소 협소한 산길을 따라 이동하지만 내리막길로서 하산이 쉽기 때문에 체력손실을 고려하여 무장사지 방향으로 오르는 것이 쉽다.

 

 

 

▲ 주차장에서 허기진 배를 채우기 위해 파전하나 시켜 놓고 ..

 

산에 발을 딛는 순간 자연에 순응하는 원칙을 반드시 지켜야 한다. 여행은 멋으로 하는 것이 아니듯 자연은 잠시 스쳐갈 뿐 소유하거나 굴복시키려는 대상이 아니라는 사실을 명심하며, 자연에 머무는 동안만큼은 철저한 자연인이 되어 보길 권하고 싶다.

 

 

 

경주에는 지금 !!

 “2014 이스탄불 in 2014”

 

무장사지를 내려와 시내를 관통하다보면 이스탄블 행사 안내가 시내 곳곳에 걸려 있다. 작년 행사에 이어 올해는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지 궁금하여 남은 자투리 시간을 이용하여 황성공원으로 발걸음을 옮겨 본다.

 

▲ 시내 곳곳에 내걸린 행사 국기

 

▲ 황성공원 참나무 군락지

 

▲ 황성공원

 

 

경주 황성공원 일원에서 이스탄불-경주세계문화엑스포 2013을 성공적으로 개최한 답방 행사로 양 도시 이스탄불-경주세계문화엑스포 2013 후속행사 개최를 합의하여 “2014 이스탄불 in 경주 2014”20140912일 금요일을 시작으로 0922일까지 개최하고 있다.

 

주요 행사로는 공동행사로 제2회 한 터 문확심포지움, 퍼레이드, 그랜드 바자르 그리고 이스탄불 홍보관을 비롯 이스탄불 사진전, 이용주 자수전, 이스탄불 공연단, 지역 예술단, 실크로드 음악회 소리길 외에도 터키 영화의 만남(다큐)이 진행된다.

 

행사장 부스는 터키의 음식과 악세사리 장신구를 소개 판매하는 하는 공간을 비롯하여 우리나라 부스에는 지역관광 안내와 한국 전통 소박한 음식코너와 도자기 등을 선보이고 있었지만 복잡한 인파의 행렬과 줄을 서서 기다려야 관람 가능하여서 무장사지를 걷고 내려 선 피곤한 몸을 더 이상 지탱하기 어려워 철수를 결정했다. 아직은 남은 기간이 있으니 시간이 허락한다면 다시 경주를 방문 할 것이다.

 

 

 

즐거운 여행하시길 바랍니다.

http://blog.daum.net/okgol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