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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남해] 남해 1024 지방도 왕벚꽃길

허영꺼멍 2015. 4. 14. 0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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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남해군                

남해 1024 지방도 왕벚꽃길

남해대교 - 충렬사 - 1024 지방도 왕벚꽃길 - 장평소류지 튤립 - 두모마을 유채밭

 

 

남해대교를 통과하기로 하였다. 봄 기운이 잠시 숨돌리는 4월 초순이 지날 무렵 남해대교 지나 1024 지방도에서 만나는 풍경을 가슴에 담고자 느린 지방도를 이용하여 남해읍으로 향한다. 남해대교 1024 지방도에서 만나는 왕벚꽃의 꿏비를 만나기 위해 봄부터 늑장을 부려가며 꽃잎이 떨어지는 시기에 맞춰 출발하였다.

 

 

 

구,노량길 노량에 서다.

 

▲ 구.노량길 해안가 주택에 그려진 이순신 관련 벽화

 

1002 지방도를 이용하여 남해대교로 진입하기 전 잠시 구노량길로 접어든다. 진교 방향에서 남해대교 건너기 전 아래 포구로 내려서는 길로 남해대교를 아래서 조망 할 수 있는 해안길로 일반인에게는 잘 알려져 있지 않는 길이지만 탐방객에게는 더 없이 좋은 길이다. 노량해안 길을 따라 선착장으로 따라 가면 담장에 벽화를 만나는데 이순신장군의 일대기를 그려 놓았다.

▲ 1024 지방도에 피어난 왕벚꽃이 거의 다 꽃잎을 떨구고 있다.

 

바다건너 1024 설천로를 따라 미처 떨구지 않은 꽃잎이 매달려 있는 벚꽃길이 능선길을 따라 이어져 있다. 왕벚꽃이 피어나 화려한 벚꽃길을 자랑하는 1024 지방도는 남해안 해풍과 함께 하늘을 가려놓은 벚나무가 흩뿌려 놓는 아름다운 장관을 만날 수 있는 곳이다.

 

구,노량해안길에서 바라 본 남해대교

 

 

해안에서 남해대교를 올려다 본다. 남해대교의 현수교 역사는 시간이 갈수록 진도대교를 비롯하여 우리나라에도 많은 연륙교를 탄생하는 계기가 된다. 현수교라 하면 외국의 금문교를 떠 올릴 것이다. 남해와 하동을 잇는 660m는 여행자가 도보로 건너 갈 수 있도록 배려해 놓았는데 남해대교 일대가 이순신장군의 최후 해전을 벌린 역사의 현장이다. 정유재란으로 왜군을 격침시키기 위해 출격했던 이순신은 노량해전에서 자신의 죽음을 적에게 알리지 말라는 유언을 남긴 후 장열하게 전사하고 남해대교를 건너면 충렬사, 이락사 등 이순신 관련 많은 여행지가 펼쳐지는 관문이다.

 

 

남해대교를 건너다

 

남해대교 전경

 

해안길에서 마을을 거쳐 다시 지방도로 올러서면 남해대교를 통과하게 된다. 사천에서 남해로 넘나드는 연륙교가 놓이기 전에는 남해대교가 아니면 남해로 들어 설 수 없었다. 봄이 되면 1002번 지방도를 이용하여 하동에서 남해 노량으로 넘어 들곤 하였는데 대다수 사람들이 남해대교를 건너기 전부터 남해 노량지역이라고 생각한다. 남해대교를 넘기 전에 분명 말하지만 여긴 하동군 금남면 쇠끝길이란 사실이다.

 

남해대교 현수교

 

굵은 케이블이 허공을 가르고 그 사이로 다리를 걸쳐 놓으니 뱃길을 이용하여 뭍으로 향하던 고단한 생활이 끝나고 육지로 이어지는 순간은 역사적인 일이 아닐 수 없었다. 1973622일 섬이 육지로 탈바꿈하면서 남해대교를 잇는 현수교를 보기위해 전국에서 관광차가 몰려들고 나이 지긋하신 분들이라면 으레 다녀가는 관광지로 한때는 몸살을 앓은 곳이 남해대교였다.

 

남해대교 아래로 내려서는 해안길

 

▲ 남해대교 건너 남해 방면 첫 진입로 입구 벚꽃터널

 

남해대교는 전장 660m, 교폭 12m, 교각높이 80m로 허공에 매달려 있는데 붉은색 연륙교에서 소금과 해풍으로 인하여 부식이 일어나자 회색으로 한 때는 칠을 하여 남해대교의 이미지에 큰 타격을 입기도 하였다. 남해대교는 일본에서 폭격하고 피해를 입은 후 되돌아오던 미군기가 남해의 망운산에서 추락하자 마을 주민 한분이 일본군의 눈을 피해 시신을 안장하여 훗날 미국은 감사의 뜻으로 소원을 묻자 남해대교 건설이라고 하여 남해대교가 미국의 지원 아래 건설되었다. 한 개인의 애국심이 만들어 낸 것이라 하여도 무방할 것이다.

 

 

충무공 시신을 첫 안장한 남해 충렬사

 

 

노량해전에서 전사한 이충무공의 시신을 아산으로 옮겨가기 전 3개월 동안 모신 임시가묘와 1633년 김여빈, 고승후에 의하여 만들어진 사당인 충렬사는 태극문양의 대문을 열고 사당으로 들어서면 남해현령 이정건이 세운 충민공비가 사당을 가릴 정도로 위엄을 갖추고 서 있다. 지금의 사당은 1658년 어사 민정중이 통제사 정익에게 사당을 신축하도록 지시하여 모습을 갖추게 되었으며, 현종이 직접 쓴 충렬사 현판이 걸려 있다.

 

▲ 충렬사 내 전경

 

 

충렬사에서 눈여겨 볼 것은 광개토대왕비 보다 큰 비석에 깨알 같은 글이 새겨져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우암 송시열이 짓고 동춘당 송준길이 쓴 것으로 가장 먼저 충무공을 기려 세운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한때 이곳에 무당이 드나들었다 한다. 최영장군이 무속신앙과 접목된 것과 비슷한 계기였는지 몰라도 이를 막기 위해 내 놓은 묘책이 서원을 만들었고 곧 노량서원이다. 서원은 오래가지 못해 대원군 서원철폐령에 사라지고 웃날 다시 사재를 떨어 만든 곳이며, 이 충무공의 후손들은 5세손인 봉상, 언상, 태상, 명상, 6세손으로 한응 등 수군통제사로 지내는 별난 진기록과 함께 모두 무인출신이라는 사실도 놀랍다.

 

 

남해대교 왕벚꽃길

 

▲ 왕벚꽃길 아래서 만난 남해대교 전경

 

남해대교를 건너면 봄철 도로변은 온통 꽃눈이 휘날린다. 03월 말부터 도로변을 수놓는 벚꽃은 남해대교 주변이 가장 아름답다. 남해대교를 건너 남해각 아래 주차장으로 향한 후 충렬사를 돌아 나서면 하얀 벚꽃이 바다에 뿌려지는데 보기 드문 왕벚꽃나무로 봄을 만끽 할 수 있는 최상의 드라이브 코스로 알려져 있다. 벚꽃과 함께 바다를 여행하면서 즐거움을 만끽 하고자 한다면 남해대교를 지나 곧장 좌회전 한 후 주차장을 거쳐 충렬사 주변을 여행할 것을 권하고 싶다.

 

 

 

남해 설천로 벚꽃을 칭송하는 것은 사람들이 거의 찾지 않아 조용한 여행을 할 수 있다는 장점이다. 단점으로는 주차를 할 공간이 거의 없어 남해대교 아래에 주차하고 이동하여야 한다는 것이지만 단점이 오히려 장점이 될 수 있다. 약간의 경사 도로를 따라 달리면 벚꽃이 긴 터널을 이루고 그 속으로 길을 열어 놓고 있다. 오른편으로는 코발트빛을 삼킨 남해 청정바다가 펼쳐져 있다. 그 흔한 커피숍도 없는 초촐한 여행길이지만 벚꽃길 만큼은 국내 최고라 할 수 있다.

 

▲ 문항-옥동마을 해안도로변 전경

 

1024번 지방도는 여름이면 또 다른 재미가 있다. 설천면사무소를 지나 만나는 문항어촌마을에서는 쏙잡이 체험도 할 수 있다. 1024번 길이 끝나는 지점부터 남해대교 지나 노량삼거리에서 잠시 벗어낫던 19번 국도와 다시 만난다. 그리고 남해읍을 지나 남해군 농업기술센터 앞에 있는 작은 장평소류지를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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