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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오는 날 비둘기처럼 노래를 들으며,

허영꺼멍 2015. 7. 23. 12:33

 

 

요즘 국정원과 마티즈 문제로 아고라가 소란스럽다. 붉은색 마티즈... 그리고 떠오르는 아련한 마티즈의 이야기...

 

내 기억속에 마티즈를 롤스로이드라며 타고 나타난 한 사람의 기억이 아직도 남아 있다. 부산에서 전주시로 자주 찾던 시절의 이야기다. 우연한 기회로 전주시 외곽에서 한복을 곱게 차려입고 선한 얼굴을 한 나이가 지긋한 부부를 길거리 탑승을 한 적이 있다. 우연인지 필연이지 목적지가 부산이었고 그것도 같은 해운대구였기에 곧장 88올림픽 고속도로를 이용하여 부산으로 동행하게 되었다.

 

전주에 왜 왔다 가느냐 묻는 질문에 조선의 개국에 관한 이야기를 찾아 자주 들른다고 하니 역사학자냐 묻는다. 단순 여행자라며 소개를 하였고 당시 직장에서 쉬는 날이면 부산에서 4시간 가까이 되던 길을 쉬지 않고 들락꺼렸다. 지금이야 길이 좋아져 단축 도로가 많이 생겼지만 그때 그 시절에는 대전-통영간 고속도로가 없어 국도와 고속도로를 번갈아 타야만 했던 머나먼 거리였다.

 

조선 왕족에 관해 얄팍한 지식을 동원하여 이야기를 하였고 노부부는 들어 주셨다. 부산을 막 들어 설 때 그분은 말했다. 혹 마지막 황손 이 석을 아느냐 물었고 난 그때만 해도 이석씨를 잘 몰랐다. 그리고 그 분은 말을 이어갔다. ‘비둘기의집노래를 아느냐며 재차 물었고 그 노래는 전 국민이 아는 대중가요가 아닌가요 하며 노래를 한 구절 불러 보였더니 그 노래가 바로 마지막 황손 이석씨의 노래라 하였다. 그리고 그 노래의 주인공이 바로 자신이라 하였다. 노부부가 농담하는 것으로 알았다. 내 차에 함께 동행하는 사람이 설마 이 석씨겠느냐며 반문을 하였고 그 궁금증은 다음날 풀렸다.

 

비둘기처럼 다정한 사람들이라면 장미꽃 넝쿨 우거진 그런 집을 지어요 / 메아리 소리 해맑은 오솔길을 따라 산새들 노래 즐거운 옹달샘터에 / 비둘기처럼 다정한 사람들이라면 포근한 사랑 엮어갈 그런 집을 지어요 / 비둘기처럼 다정한 사람들이라면 장미꽃 넝쿨 우거진 그런 집을 지어요 / 메아리 소리 해맑은 오솔길을 따라 산새들 노래 즐거운 옹달샘터에 / 비둘기처럼 다정한 사람들이라면 포근한 사랑 엮어갈 그런 집을 지어요. (전우 작사·김기웅 작곡)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비둘기의집은 황손가수 이석(본명 이해석)씨의 1964년 첫 데뷔음반에 실린 노래였다. 비운의 황손으로 알려진 이 석씨는 고종황제의 손자이자 의친왕의 아들로 1941년 서울 관훈동 사동궁에서 의친왕이 62살이 되던 해 11번째 아들로 태어났다. 이후 이승만 정부가 시작되면서 황실의 재산이 국고로 환수되면서 빈털터리로 거리를 떠돌았고 이후 대통령이 바뀔때마다 달라지는게 없었다고 하였다. 망한 조선의 왕실 후손은 그렇게 거리에서 남은 여생을 마쳤다.

 

부산으로 돌아온 후 다음 만남을 약속하고 인터넷을 동원하여 마지막 황손에 관한 자료를 찾아보았다. 지금은 황실 명예 회복을 위해 노력하고 계시지만 미국 도피생활과 특수 부대원 출신으로 베트남 까지 다녀왔으며, 재산이 없어 길거리 방황을 하고 계셨다. 그러면서 만남이 있는 날 검소함을 강조하며, 황실이 타는 승용차 경차를 자랑하셨다. 망한 조선의 왕손으로 붉은 롤스로이드 마티즈...

 

만남과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노래에 관해 먼저 풀어헤쳤다. 비둘기처럼은 나라를 잃은 설움을 역설한 것이라 하셨다. 백성을 편안하게 해주지 못한 그 미안함과 울타리를 만들고 함께 편한 세상을 살고자하는 바램이었는데 가슴 아픈 것은 관중석에서 앙코르를 부를 때라고 하셨다. 잃어버린 아픈 황실의 이야기를 듣다보면 조선시대에 머물고 있는 착각이 들 만큼 현실성이 베여있었다. 이후 해운대구에서 자리를 옮겨 김해시 모 사찰에 머물고 계실 때 볼링이나 한게임 하자며 연락이 오셨고 그때 만남 이후 연락을 하지 못했다. 개인적으로 건강이 악화되면서 아는 사람들과의 모든 연락이 두절되었다. 십여년 시간이 흘렀는데 어느 날 휴대폰에 문자가 왔었다. 전주시 한옥마을에 계시다며 한번 들르라고...

 

우리나라 황실은 일본에 의해 소멸되어 버렸고, 지금 한결같이 조선의 무능을 이야기하며 부꾸러운 과거사로 치부해 버리는 조선의 역사는 과연 무능하기만 하였을까? 우리의 역사 중에서 일제가 강제로 각색한 역사를 곧이 곧데로 배운다면 이 얼마나 끔찍한 일이 아닐까 싶다. 조선의 몰락과 함께 왕실은 사라지고 대통령제가 시행되는 지금 조선시대의 판단은 개인들의 판단에 맏길 수 밖에 없을 듯 싶다.

 

우연히 인터넷 아고라 마티즈 글을 보다 벌써 10여 년 전의 이야기를 떠올려졌고 지난 묻혀져 있던 시간들이 파노라마처럼 스쳐갔다. 시간이 되면 전주시로 한번 나들이 하여 이석씨를 만나뵈어야 할 것 같다. 오랜 세월이 흘러 나란 사람의 기억을 하기나 할지 나도 장담하지 못하겠지만 내가 기억하는 그 선한 얼굴은 변함이 없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