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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악트레킹 제1편 경주남산을 오르다. 통일전-칠불암

허영꺼멍 2015. 8. 28. 0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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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경주시           

경주 동남산 트레킹

 

통일전-서출지-남산삼층석탑-염불사지-칠불암-신선암-백운재-이영제-삼화령-금오봉-부석-국사곡-통일전

 

 

불교유적이 골짝마다 자리한 경주 남산으로 숨어들었다. 신라 왕도였던 경주의 남쪽에 솟아 있는 금오산 그리고 고위산 두 봉우리를 비롯하여 도당산. 양산 등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를 통틀어 남산이라 한다. 즉 남산에 간다는 것은 금오산으로 간다는 것과 다를 봐 없다.

 

▲ 남산 칠불암 마애불 전경

 

금오봉(468m), 고위봉(494m)을 두고 있는 남산지구는 행정구역상으로 남산동, 탑정동, 인왕동, 배동, 평동, 내남면 용장리, 노곡리로 1968년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남산은 남북길이 9km, 동서 너비 4km에 이르는 타원형으로 50여개의 계곡이 형성되어 있는데 남산에는 경주 내 불교유적이 집중적으로 형성되어 있는데, 절터 150여 곳이 확인되며 주변에 많은 유적이 산재해 있다.

 

출발을 준비하다.

 

▲ 올려다 본 부석 바위

 

통일전 주차장에서 도착하다. 오늘 찾아갈 코스를 서출지를 시작으로 남산 칠불암을 경유하여 금오봉으로 향하는 능선길을 오르내리다 팔각정 터에서 하산하기로 하였다. 대략 10km 정도 되는 코스이며, 체력이 남아 있을 때 걷고 하산할 때 차량회수가 쉽도록 통일전에 주차를 해 놓고 차로 염불사지까지 갈 수 있지만 도보로 약 1.3km를 걸어 이동하기로 했다.

 

통일전 주차장에 주차를 한 후 마을길을 따라 서출지를 시작으로 남산삼층석탑-양피저수지-염불사지-남산입구-칠불암-신선암-백운재-용장계지삼층석탑-백운재-이영재-삼화령 비석받침대-삼화령고개-금오봉-팔각정터-남산부석-국사곡 계곡-통일전 주차장

 

 

 

까마귀 설화가 전해지는 서출지

 

서출지에 도착한다. 배롱나무가 한창 붉다. 신라 소지왕 당시의 설화가 묻어져 있는 곳으로 왕의 생명을 구해준 연못으로 알려져 있으며, 조선 현종5(1664)에 임적이 만든 이요당 건물이 연못과 함께 고즈넉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는 곳으로 8월 말 아직도 일부 연꽃이 피어나 여름을 즐기고 있다.

 

▲ 08월 말 서출지 전경

▲ 배롱나무가 주변을 애워싸고 있다.

소지왕이 궁 밖을 거둥하는데 쥐가 나타나 까마귀가 가는 곳을 따라가라고 한다. 왕이 이 말을 따라서 연못에 가까이 오니 한 노인이 나타나 "거문고 갑을 쏘시오" 라는 글이 적힌 종이를 받쳤다.

 

왕은 궁으로 돌아와 거문고 갑 을 화살로 쏘니 그 속에 숨어있던 궁주와 승려가 화살에 맞고 죽었다 한다. 그 후 연못을 서출지라 부르며, 까마귀에게 찰밥을 주는 "오기일" 이 생겨났으며, 지금도 정월대보름이면 까마귀밥을 만들어 감나무 밑에 찰밥을 묻어 둔다고 한다.

 

설화를 당시 시대상으로 살펴보면 왕이 거동한 틈을 타서 왕을 시해하려는 무리가 거문고 갑에 숨었는데 누군가 서출지에 당도한 왕에게 이 사실을 알려 시해하려는 음모를 사전에 차단하였다는 이야기이다. 당시 불교가 자리 잡지 못한 상태로 민간신앙과 신흥불교의 충돌을 묘사하고 있는 것으로 불교 23대 법흥왕 때 비로소 나라에서 불교를 인정하고 그 이전에 불교가 진입하는 과정에 있었다.

 

 

이요당에 관한 안내글을 옮겨보면 다음과 같다. 이요당(二樂堂)은 조선 헌종 5(1664)에 임적(1612-1672)이 지은 건물이다.

 

연못에 돌을 쌓아 그 위에 건물을 올렸으며, 당초에는 3칸 규모였으나 다섯 차례의 중수를 거쳐 현재는 정면 4, 측면 2, 팔작지붕 자 모양의 구조를 갖추었다.

 

임적은 가뭄이 심했을 때 땅 밑의 물줄기를 찾아내어 이웃 마을까지 물이 부족하지 않도록 하였으며, 평소 가난한 사람들을 많이 도와 덕망이 높았다. 이요당은 요산요수의 뜻을 취해 편액 하였으며, 남쪽 양피못 언먹에는 임적의 아우 임극이 지은 산수당이 있다.”

 

최근 서출지에 관한 논란 꺼리가 생겼다. 삼국유사 사금갑의 이야기를 빌어 서출지가 지금의 위치가 아니라 200m 더 올라가면 양피 못이란 작은 연못이 있는데 그곳이 서출지로 추정되고 있다.

 

 

 

남산동 동서삼층석탑(보물 제124호)

 

서출지가 있는 남산 자락에 위치한 마을에 있는 2기의 석탑으로 멀리서 보면 두 개의 탑이 같은 모양을 하고 있지만 가까이 가면 전혀 다른 두 개의 탑이 나온다. 불국사와 같은 전혀 다른 두 개의 탑이 좌, 우에 배치되어 있는데 동탑은 석탑의 시초인 모전석탑형식으로 밋밋한 돌을 곧장 쌓아올린 듯 보이지만 서탑은 각 모서리마다 경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장식이 새겨져 있다.

 

▲ 남산동 동.서석탑

 

이 석탑의 조성 시기는 9세기경으로 추정할 뿐 조성 경위는 알 수 없다. 동탑은 모전석탑 방식의 7.04m 로 서탑보다 높은 3층탑으로. 이형기 단위 탑신을 올렸지만 상륜부는 보이지 않으며, 전혀 장식을 찾을 수 없다. 다만, 정면에 네모꼴 감실을 얇게 만들어 문을 표시해 두었다.

 

▲ 모전석탑 형식을 취한 동탑

▲ 모전석탑형식과는 전혀 다른 서탑

동탑은 네모진 돌을 마치 벽돌을 쌓아올린 모습으로 바닥에서 여덟 개의 돌을 서로 맞대어 자리잡고 층마다 몸체돌 하나에 지붕돌 하나를 올려두었다. 서탑은 지적인 아름다움을 표현한 흔적을 느낄 수 있다.

 

동탑이 무뚝뚝한 네모진 큰 돌을 사용하여 쌓듯 올렸다면 서탑은 신라후기양식을 반영한 여성적인 미를 한껏 표현하고 있다. 불국사의 다보탑과 석가탑의 배열과 흡사하며. 이중 기단 위 3층 몸돌을 올려두고, 윗 기단 몸체에 부처의 세계인 수미산을 표현하는 팔부신중을 새겼다.

 

 

▲ 동탑 사면에 새겨진 팔부중상

 

▲ 남산동 동.서삼층석탑은 서출지로부터 450m

염불사지로 부터 650m 지점이다.

 

경주남산리삼층석탑(보물 제124)으로 불리던 탑이 경주 남산동 동. 서 삼층석탑으로 이름이 변경되었다. 동탑에 관한 안내글을 옮겨보면 다음과 같다. “이 탑은 불국사의 석가탑과 다보탑처럼 형식을 달리하는 두 탑이 동서로 마주보고 서 있다. 동탑은 3층인데, 돌을 벽돌처럼 다듬어 쌓은 모전석탑 양식으로, 바닥돌 위에 돌덩이 여덟 개로 어긋물리게 기단을 쌓고 층마다 몸체돌 하나에 지붕돌 하나씩을 얹었다. 지붕돌은 벽돌을 쌓아 만든 것처럼 처마 밑과 지붕 위의 받침이 각각 5단이다.”

 

서탑에 관한 안내글을 옮겨보면 다음과 같다. “서탑은 이중기단 위에 3층으로 몸돌을 쌓은 일반적인 형태로 윗기단의 몸체에 팔부신중을 돋을새김한 것이 독특하다. 팔부신중은 신라 중대 이후에 등장하는 것으로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탑을 부처님의 세계인 수미산으로 나타내려는 신앙의 한 표현이다.”

 

 

서출지 옛터?  양피지

 

▲ 양피지 전경

 

양피지에도 여름이 머물러 있다. 연꽃과 수련이 소류지를 가득 채웠으며, 소류지 제방 한켠에는 제법 큰 나무에도 짙은 녹음이 몸집을 불리고 있다. 최근 서출지에 관한 논란 꺼리가 생겼다. 삼국유사 사금갑의 이야기를 빌어 서출지가 지금의 위치가 아니라 200m 더 올라가면 양피 못이란 작은 연못이 있는데 그곳이 서출지로 추정되고 있다.

 

 

염불사지 삼층석탑(사적 제311호)

 

삼국유사에 의하면 "한 스님이 하루에 몇 번씩 시간을 정해 염불을 외우셨다. 법당에 앉아 나무아미타불을 부르는 소리가 당시 서라벌 36017만호에 들리지 않는곳이 없어 사람들은 그를 공경하여 열불사라 불렀는데 스님이 돌아가니 그의 초상을 흙으로 만들어 염불사에 모시고 그가 살던 곳을 염불사로 고쳐 불렀다 "한다.

 

▲ 염불사지 삼층석탑 전경

염불사지에서 남산동동서삼층석탑으로 부터 650m, 칠불암까지는 2km 구간이다.

 

염불사는 흩어진 부재를 1963년 불국사 입구 구정광장에 세웠으나 20081.24 해체하여 2007613일 복원을 시작 2009115일 정비 완료하여 오늘날 자리로 옮겨오게 되었다. 석탑은 7세 말~8세기 초로 추정하고 있다.

 

염불사지에 관한 안내글을 옮겨보면 다음과 같다. “신라에 불교가 전래된 이래 수많은 불교유적이 계곡마다 조영된 경주 남산은 신라인들의 역사와 문화. 신앙이 지금도 살아 숨 쉬고 있는 영산으로써 2000.12.2.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동남산 봉구곡 자락 남산동 1130번지 일원에 위치한 불 염불사지에 대해 삼국유사에는 한 스님이 하루에 몇 번씩 시간을 정해 염불을 외우셨다. 법당에 앉아 나무아미타불을 부르는 그 소리가 당시 서라벌 36017만호에 들리지 않는 곳이 없어 사람들은 그를 공경하여 염불사(念佛師)라 불렀는데 스님이 돌아가니 그의 초상을 흙으로 만들어 민장사(敏藏寺)에 모시고 그가 살던 피리사(避里寺)를 염불사(念佛寺)로 고쳐 불렀다고 기록되어 있다.”

 

▲ 염불사지 동탑

▲ 염불사지 서탑

 

염불사지 탑에 관한 안내글을 옮겨보면 다음과 같다. “무너져 있던 전() 염불사지 석탑 2기의 탑재와 도지동 이거사지 삼층석탑의 1층 옥개석을 이용 하여 1963년 불국동 구정광장에 삼층석탑을 세웠는데 2008124일 복원을 위하여 해체하였으며, 복원공사는 2007613일 착공하여 2009115일까지 석탑 2기와 주변정비를 완료하였다. 서탑의 사리장엄구를 봉안하였던 사리공은 다른 석탑에서는 볼 수 없는 2개이며 3층 탑신의 방형사리공이 투공된 점 등으로 보아 최초 탑 건립시기를 7세기말 또는 8세기 초로 추정할 수 있다.”

 

 

 

남산 계곡으로 접어들다.

 

▲ 칠불암으로 향하는 물건, 오른쪽은 올라가는 물건, 왼쪽은 내려온 물건이다.

염불사지를 지나 칠불암으로 오르는 초입에서 지게를 발견한다.

 

칠불암 머무는 스님에게 갈 사찰에 필요한 물건을 파렛트에 올려 두면 사찰을 방문하는 탐방객이나 신도가 작은 봇짐이라도 하나씩 들어 올려준다. 내려다 놓는 것은 마찬가지로 무거운 물건을 이동할 때 사용하기 위해 지게를 놓아두었다.

▲ 칠불암으로 오르는 계곡에 맑은 물이 흐른다.

 

▲ 삼각대 없이 고장난 렌즈로 이정도면 만족~

▲ 칠불암 입구에 자리한 약수터

 

 

비가 제법 많이 온 다음날이라 그런지 계곡에 물이 제법 불어나 있었다.

 

평소 발 담그기 좋을 만큼 넉넉하지는 않지만 물이 흐르던 곳에 갑자기 내린 비로 인하여 계곡마다 물이 불어 넘쳐났고 그 덕분에 생동감 있는 계곡을 따라 오를 수 있었다. 물런 계곡인 만큼 초입부터 사진 찍다 바위에 미끌 하여 옷을 다 적시고 질퍽한 등산화 소리를 들어면서 올라야 했다.

 

칠불암(국보 312호)에서 침묵하다.

 

 

▲ 칠불암에서 통일전까지 3.5km, 용장마을 4.0km, 고위봉 1.35km, 신선암마애보살반가상 200m 이다.

통일전 주차장으로부터 약 3.5km 이동하면 만나는 곳이 칠불암이다.

 

경주 남산 칠불암 마애불상군은 국보 제312호로 큰 암석면을 깎고 마애삼존불을 새기고 앞에 사각바위 사면에 각 1분씩 새겨 총 7분으로 칠불암 마애석불이라 불린다.

 

삼존불 중 본존불의 온화한 미소와 연꽃대좌의 그림을 통해 연화세상을 유감없이 표현하고 있다.

 

▲ 국보 제312호 경주남산 칠불암 마애불상군

▲ 마애불상군 주변 전경

 

칠불암까지 오르는 산길이 제법 골이 깊어 숨이 목까지 차 오를 즈음 약수터가 나오고 약수터에서 돌계단을 다시 헉헉 꺼리며 올라서야 칠불암을 만난다. 칠불암에는 비록 자판기 커피지만 무료공양을 한다. 사탕도 바구니에 있다. 커피 한잔을 뽑아들고 마애불 앞에 있는 의자에 앉아 잠시 숨고르기를 하며 마애불을 만난다.

 

▲ 돌출된 바위 사면에 연꽃대좌 위 좌선하는 불상을 새겼다.

▲ 사면석불 불상이 한결같이 정교하다.

▲ 사면석불 뒷편이자 신선암 아래 자리한 바위에 조성한 본존불과 협시불

▲ 본존불을 중심으로 좌우 협시불

 

경주 신선암 마애불 아래 아담한 절집이 자리잡고 있는데 바로 칠불암이다. 사각의 네모돌 사면에 불상을 4구 새기고 그 앞에 3분을 더 새겨 총 7분으로 이를 두고 칠불암이라고 한다. 국보 제312호 경주남산칠불암마애불상군은 남산 봉화골에 위치한 불상 중에서 가장 작품성이 우수한 불상으로, 풍만한 얼굴과 당당한 자태를 자랑하는 통일신라시대 8세기 작품으로 추정하나 사면석불형태의 돌이 옮겨 왔거나 위에 지붕 또는 탑 등 뭔가 올려진 흔적의 홈이 바위 윗면에 있어 궁금증을 자아낸다.

 

▲ 경내 자리잡고 있는 훼손된 탑 1기

 

국보 제312호 경주 남산 칠불암 마애불상군에 관한 안내글을 옮겨보면 다음과 같다.

 

이 불상들은 경주 남산 봉화골의 정상 가까이 위치한 마애삼존불과 사방불로서 칠불암 마애석불이라 불린다. 삼존불의 가운데에 있는 본존불은 앉아 있는 모습으로 미소가 가득 담긴 양감있는 얼굴과 풍만하고 당당한 자세를 통해 자비로운 부처님의 힘을 드러내고 있다.

 

왼쪽 어깨에만 걸치고 있는 옷은 몸에 그대로 밀착되어 굴곡이 실감나게 표현되어 있다. 오른손은 무릎 위에 올려 손끝이 땅을 향하고 왼손은 배 부분에 대고 있는 모습이다. 사방불도 모두 연꽃이 핀 자리에 앉아 있는 모습으로 각기 방향에 따라 손 모양을 다르게 하고 있다. 보살상이 본존을 향하고 있는 것이나 가슴이 길고 다리가 짧게 조각된 수법으로 보아 통일신라시대인 8세기경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제1편 통일전-서출지편

제2편 신선암-국사골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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