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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찰트레킹 - 여주여행 3편 하리, 창리삼층석탑

허영꺼멍 2015. 12. 30. 0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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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리&창리 삼층석탑을 만나다.

| 여행일자 : 2015년 12월 26일

 

 

명성황후생가-세종대왕릉-효릉왕릉-하리& 창리 & 영월루-신륵사-고달사지-파사성 & 마애불-포츠골미륵좌불-도곡리석불좌상

 

▲ 2기의 석탑이 올려다 보인다.

 

여주시 여행에서 스쳐가면서도 빠뜨리고 가는 여행지가 바로 영월루가 있는 곳으로 이곳에는 현충탑을 비롯하여 여주 마암, 불교유적으로 1958년 이곳으로 옮겨온 보물급 2기의 석탑이 자리잡고 있는 곳이다. 석탑은 여주 하리삼층석탑(보물 제 92), 여주 창리 삼층석탑(보물 제91) 등을 만날 수 있다. 영월루 근린공원이 있는 이곳은 신륵사로 향하는 여주대교 입구로 상리사거레에 위치하고 있다.(네비입력 : 경기 여주시 상동 130)

 

▲ 사진속 앞 창리삼층석탑, 뒤 여주하리삼층석탑

 

현충탑 아래 주차장에 주차를 한 후 탐방로를 따라 조금 오르면 석탑 2기를 만나게 된다. 사찰이 사라지고 도시가 확장되면서 작은 규모의 사지는 존재가치를 잃어가면서 개발되기 시작하였고 사지에서 유일하게 남아 있던 석탑을 옮겨 놓은 곳이 바로 이곳으로 2기의 석탑이 본래의 자리를 떠나와 이곳에 자리잡고 있다. 이곳에는 석탑 외에도 군청 정문으로 사용되던 영월루가 옮겨와 있으며, 비석들을 모아 비석거리를 만들어 이곳이 길 잃고 방황하는 문화유산의 새로운 안식처가 자리잡은 곳이다.

 

 

여주하리삼층석탑(보물 제92호)

 

▲ 여주하리삼층석탑(보물 제92호)

 

여주하리삼층석탑(보물 제92)에 관한 안내글을 옮겨보면 다음과 같다.

 

이 석탑은 본래 하동의 옛 절터에 있던 것을 1958년 창동의 5층석탑과 함께 현재의 터로 옮긴 것으로, 1단 기단위에 3층 탑신을 얹은 모습이다. 기단의 사면의 모서리에 기둥 모양을 본떠 새기고, 그 윗돌 중앙에 1층 몸돌을 괴기 위한 2단의 테두리 조각을 둘렀다. 탑신은 몸돌과 지붕돌이 각각 하나로 이루어져 있으며, 몸돌의 각 면 모서리마다 얕은 기둥 형태의 조각이 나타나 있다.

 

지붕돌 밑면의 받침은 4단으로, 처마는 수평을 이루다가 양쪽 귀에서 위로 약하게 솟아있다. 전체적으로 돌을 짜서 올리는 수법의 규칙성을 보이고 온화한 비율감이 느껴져 고려 전기보다는 중기에 세워졌을 것으로 보인다. 탑을 옮겨 세울 당시, 1층 몸돌에서 독특한 모습의 사리홈이 발견되어 흥미를 끌고 있다. , 몸돌 윗면의 중앙에 높이 3cm의 얇은 띠가 둘러져 있고 그 안으로 2개의 구멍이 파여 있는데, 이와 닿게 되는 지붕돌의 밑면에도 이를 배례한 듯 홈이 깊게 파여져 있다. 이는 몸돌의 윗면에만 깊은 홈을 두어 사리를 담아두는 일반적인 모습이 아니라 그 정반대의 형태를 하고 있어 독특하다.’

 

여주 창리삼층석탑(보물 제91)

▲ 여주 청리삼층석탑(보물 제91호)

 

여주 창리삼층석탑(보물 제91)에 관한 안내글을 옮겨보면 다음과 같다.

 

이 석탑은 본래 여주 내 과수원 안의 옛 절터에 있던 것을 1958년 현재의 터로 옮긴 것이다. 2단의 기단위에 3층 탑신을 올린 일반적인 형태이나 그 느낌이 독특하다. 아래기단의 4면에는 안상이 2개씩 새겨져 있는데, 움폭한 무늬의 바닥선이 꽃모양처럼 솟아올라 있어 당시의 조각기법이 잘 드러나 있다. 기단을 마감하는 맨 윗돌에는 엎드린 연꽃 모양의 조각을 둘러놓았는데, 보기 드문 모습이다.

 

탑신은 독특한 수법으로 돌을 올려놓고 있다. 1층의 몸돌만 하나의 돌을 사용하였고, 이후 지붕돌부터는 위층의 몸돌과 하나로 이루어져 있어 마치 모자 형태의 돌 3개를 얹어놓은 듯하다. 지붕돌 밑면의 받침은 3단이며, 추녀는 매우 두껍고 귀퉁이 끝의 돌림도 희미하다. 각 부분의 재료가 두툼하여 전체적으로 높게 보이며, 아래 기단의 안성이나 3단의 지붕돌 밑면받침 등에서 고려시대의 모습이 잘 나타나 있다. 조각수법도 엉성하고 몸돌과 지붕돌을 각 하나의 돌로 쌓는 등 간략한 모습들도 여기저기 보이고 있어 고려 중기 이후에 세워진 것으로 여겨진다.’

 

영월루(경기도 문화재자료 제37호)

 

▲ 동산 가장 높은 곳에 자리한 영월루 전경

영월루는 경기도 문화재자료 제37호이다. 안내문을 옮겨보면 다음과 같다. ‘원래 군청의 정문이었는데 1925년경 신현태 군수가 현재의 위치에 누각으로 다시 세웠다고 한다.

 

영월루 뒤쪽으로는 비석거리가 있고 아래쪽에는 1958년에 옮겨진 창리 3층 석탑(보물 제91)과 하리 3층석탑9보물 제92)이 있다. 상층 누마루에 올라보면 한강 상류 쪽으로 강 건너편에 신륵사가 보이며 하류 쪽으로는 멀리 홍천면 마을이 보여 전망이 매우 좋다.

 

누각 바로 아래는 기암절벽인데 암벽에는 힘 있는 필치의 마암이라는 글씨가 새겨져 있다. 영월루는 정면 3, 측면 2칸의 익공계 팔작지붕으로 구성된 2층 누각인데, 익공의 형내타 가구수법으로 미루어 18세기 말의 건축물로 추정된다.’

 

▲ 여주시 주변에 흩어져 있던 신도비를 비롯 이곳에 옮겨 놓았다.

 

현충탑

 

▲ 2005년 다시 조성된 현충탑

현충탑을 만난다. 여주시 현충탑에 관한 안내글을 옮겨보면 다음과 같다.

 

본 현충탑은 조국의 자유와 평화를 위하여 공산 침략자와 싸우다가 전사하신 해군중령 고 장남섭 외 957위의 호국 영령들을 추모하기 위하여 195966일 여주군민의 뜻을 담은 성금으로 제막되었고, 1981년 탑 기단부를 설치하는 등 보강사업을 실시하였고, 200411월 군민의 염원을 모아 재건립에 착공하여 20055월 준공하였다.

 

사전조사가 부실했는지 미처 마암을 다녀오지 못했다. 마암이 신륵사 지구에 있는 것으로 착각하였고 그렇게 석탑을 거쳐 영월루에서 하염없이 흐르는 강을 내려다 보다 현충탑을 거쳐 다시 주차장으로 내려섰다. 마암은 하리, 창리삼층석탑 앞 탐방로를 따라 조금만 이동하면 내려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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