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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은행나무 물들고, 10월 말-11월 초 |
경주 운곡서원, 경주 통일전, 대구 도동서원, 보령 의자왕은행나무, 영동 영국사, 장성 필암서원, 청도 운문사 |
경상북도 경주시 운곡서원 한그루의 은행나무 11월 첫 주에 방문하였을 당시 은행나무는 청춘의 옷을 입고 있었다. 다시 찾아 올 것이라 여기며 길을 떠났고 그렇게 단풍시즌을 맞이하여 여행을 하느라 잠시 잊고 있었다. 전라지역 여행을 하고 돌아오던 길 산과 인접한 동네를 따라 오르는 비탈길 가로수 은행나무가 노랗게 물들어 있는 게 아닌가. 아.. 매년 운곡서원 은행나무 안부를 다시 물어보기 위해 길을 떠난다. ▲ 은행나무가 샛노랗게 물들일 즈음 많은 사람이 찾아 단풍을 즐긴다.
유연정 담장 너머 가을이 걸려 있다. 운곡서원 유연정 앞에 있는 은행나무는 죽림 권산해 후손인 권종락이 권산해의 억울함을 달래주기 위하여 다녀갈 때 순흥 금성단 옆 압각수 가지를 꺾어 심은 것이라 한다. 당시 나뭇가지를 5월 5일 날 꺾어들고 양주에서 예천을 거쳐 운곡에 6월 16일 도착하니 가지가 메말라 살기 어려웠지만 “우리선조 죽림공의 충절이 다시 빛나듯이 이 나무도 반드시 살아 날것‘이라며 심었다 전한다. 은행나무는 경주시 보호수 11-15-16호로 지정되어 있다. 바람 한 점 없는 날 왕신저수지에서 청수골로 접어드니 주차장이 만원이다. 차가 비집고 들어 갈 공간조차 없을 만큼 많은 사람들이 찾아왔다. 샛노랗게 물든 은행나무는 딱 좋을 만큼 물들어 있었고, 탐방객과 사진을 담고자 하는 출사객은 삼각대를 설치 해 놓고 요지부동이다. 카메라 앵글이 딱 은행나무를 잡고 있으니 일반 탐방객은 은행나무 근처도 못 간다. 출사를 나온 단체와 개인은 350년 묵은 은행나무 잎사귀가 바람에 흩날리는 장면을 담기 전에는 절대 자리를 떠나지 않을 태세다. 경상북도 경주시 통일전 앞 은행나무 가로수길 통일전 은행나무를 잠시 만나고 가기로 했다. 10일 전에 다녀왔는데 그때 은행나무 숲길이 물들기 시작하였기에 적어도 지금쯤이면 가로수가 샛노랗게 함성을 지러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통일전으로 향하는 길목에는 경상북도 산림환경연구원이 있으며, 그 속에는 가을 낙엽이 오지게 널부러져 있다. ▲ 은행나무 샛노란 물이 들면 가로수에는 울긋불긋 옷을 차려입은 탐방객이 찾아든다.
경북산림환경연구원에서 노래 한구절이 채 끝나기 전에 통일전 주차장에 도착한다 산림환경연구원에서 통일전 까지 약 1.6km 구간이다. 통일전 주차장에 주차를 한 후 통일전으로 들어 선 후 먼발치에서 통일로 대로변 가로수를 바라본다. 가을이 양쪽으로 꼿꼿하게 서 있다. 무심한 트럭 한 대 툴툴 꺼리며 지나간다. 트럭이 사라진 자리에는 사람들이 몰려들어 사진을 찍느라 도로가 인도로 변해 버렸다. 항상 느끼는 것이지만 아찔한 모습이다. 통일전 앞 통일로 가로수는 은행나무로 직선구간이 제법 길다. 통일전에서 내려다 보는 가을 전경과 도로변에서 통일전 방향으로 반대로 바라보는 모습이 제각기 다른 그림을 그려낸다. 통일전 앞에서 직선 구간이 약 1km 구간이며, 총 은행나무 가로수길은 약 2km 구간이다. 통일전을 내려 선 후 인근 서출지를 돌아 도로를 따라 거닐어 본다. 샛노란 가을이 그려내는 아름다운 전경에 잠시 빠져들어 본다. ( 주요 코스: 경상북도 산림환경연구원 - 통일전 - 서출지 - 통일로 은행나무가로수 - 불국사 단풍 - 운곡서원 은행나무) 대구광역시 달성군 도동서원 11월이 시작되면 전국은 단풍물결로 인산인해를 이룬다. 복잡하고 더디기만 한 여행지를 찾기보다 홍선대원군 서원철폐령이 내려졌을 당시 피해를 입지 않은 47개 서원중 세계유산 잠정목록에 등재된 9개 서원 중 한곳인 도동서원을 찾아 길을 열어 본다. 도동서원은 조선 선조 원년(1568) 비슬산 자락에 터 잡은 쌍계서원이 임진왜란을 통해 소실되자 1604년 도동서원으로 재건되었으며, 한훤당 김굉필(金宏弼, 1454∼1504)과 조선 중기 문신 학자 외증손 정구(1543~1620)를 모신 곳으로 사적 제 488호이며, 서원에는 국내 유일 건물 담장이 강당과 함께 보물 제350호로 지정되어 있다. ▲ 내려다 본 도동서원 전경
도동서원을 여행하려면 우선 다람재를 거쳐야 한다. 느티골과 정수골 사이 산등성이로 그 모습이 다람쥐를 닮아 다람재라 부른다 하지만 높지도 않은 산길이 돌고 돌아 오르는 것이 다람쥐도 쉬어 가는 곳이란 의미라고도 한다. 그래서 일까 딱 고만고만한 높이에 전망대가 자리 잡고 있으며, 전망대에서 시원하게 흘러가는 영남의 젖줄 낙동강 칠백리 푸른 물길과 함께 도동서원을 한눈에 내려다 볼 수 있다. 선조 38년(1605) 유림들은 김굉필의 위패를 봉안하였고, 1607년 공자의 도가 동쪽으로 왔다는 뜻의 ‘도동(道東)’을 사액 받은 후 숙종 4년(1678) 김굉필 외증손 정구를 추가 봉안하였다. 그 후 홍선대원군 서원철폐령이 내려졌을 당시에도 국내 47개 서원은 철폐령에서 빠졌는데 도동서원이 그중 한곳이며, 매년 2월과 8월에 향사를 올리고 있는 곳이 바로 도동서원이다. ▲ 도동서원 전경 400년을 훌쩍 넘긴 은행나무를 만난다. 도동서원 은행나무는 김굉필의 외증손 한강 정구가 심었다 한다. 수령이 400년 된 은행나무로 경주 운곡서원, 풍기 소수서원 은행나무처럼 대부분 곧게 위로 자라는 반면 도동서원 은행나무는 가지를 옆으로 늘어뜨려 운치를 더하는데 높이 25m 은행나무를 두고 김굉필나무라 하며 학자수라고도 한다. 충청남도 보령시 청라은행마을 의자왕 은행나무 국내 은행생산 10%를 차지하는 곳이라는 근거 하나로 일단 청라면으로 접근하니 이런일이 있나. 가로수부터 뚝뚝 떨어져 만나는 마을마다 온통 은행나무가 샛노란색으로 물들어 있다. 왜 이런곳이 알려져 있지 않았지? 단풍잎에 빠져드는 가을여행 그러나 은행나무 샛노란 단풍 역시 명품에 가깝지 않던가. 아무리 작은 은행나무라 하여도 족히 몇십년에서 백년은 기본인 청라면 은행나무길 그 속으로 점점 빠져든다. ▲ 청라 은행마을 신경섭가옥 주변 전경
정확하게 은행마을에 얼마나 오래된 은행나무가 얼마나 많은지 알 수 없지만 TV에서 오백년된 은행나무를 중심으로 삼천그루가 있어 오래된 나무를 의자왕은행나무라 한다고 하였는데 마을에 들어서니 정말 눈에 보이는 것은 은행나무 뿐이다. 은행마을을 찾는데는 그리 어렵지 않았다. 청라면에 들어선 후 주민에게 "은행마을"을 물어보니 쉽게 가르쳐 주는데 도착하고 보니 신경섭가옥 이정표를 찾아가면 제일 빠른 길이였다.
청라은행마을의 터줏대감이자 의자왕은행나무로 청라은행마을에 제일 먼저 뿌리 내린 은행나무로 500년 되었다 하는데 표지판에 천년으로 적어놨다. 아무리봐도 천년은 안되는데 누군가 수정을 하였나 보다. 청마은행마을에서 의자왕은행나무를 만나는 길목을 따라 약 3000그루의 암 은행나무가 있는데 열매 수확을 위해 열매가 열리는 암나무를 심은 것으로 보여진다. 수은행나무가 부족하니 열매를 맺기위해 수은행나무 가지를 꺽어 암은행나무 주변에서 가지를 흔들어 꽃가루를 뿌렸다 하니 전부 자기 부인이 아닌가. 충청북도 영동군 영국사 은행나무 가을 단풍 그 샛노란 유혹이 시작된다. 용문사 초입에서 만나는 천연기념물 제223호 영국사 은행나무는 약 1,200년으로 용문사 은행나무 보다 백살정도 더 오래된 나무로 둘레 11m, 높이 31.4m 이다. ▲ 영국사 입구에 들어서면 은행나무와 그 뒤오 영국사를 품은 천태산이 조망된다.
대한불교조계종 제5교구 본사 법주사의 말사로 창건에 관한 자세한 기록이 없어 통일신라 후기에 창건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국청사로 불렀던 사찰은 공민왕이 홍건적의 난을 피해 오면서 국태민안을 기원하면서 영국사로 고쳐 불렀다. 영국사 대웅전은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61호로 주존불로 석가여해좌상을 모시고 있다. 영국사 불교유적으로 원각국사비(보물 제534호), 영국사 승탑(보물 제532호), 영국사 삼층석탑(보물 제533호), 망탑봉 삼층석탑(보물 제535호), 영국사 후불탱화(보물 제1397호) 그리고 천연기념물 제223호 영국사은행나무 외에도 많은 지방유형문화재가 있다. 전라남도 장성군 필암서원 사적 제242호 필암서원은 송강 정철의 스승이자 인종의 세자시절 스승이던 하서 김인후(1510~1570)를 추모하고 있는 서원이다. 홍살문을 시작으로 확연루(廓然樓)를 만나게 된다. 서원의 외부 공간이지만 이 또한 예의를 갖추고 행동하는 공간으로 홍살문으로부터 왼편에는 말을 타고 들어 올 수 없는 하마석이 놓여 있는데 보통 비석에 하마석(下馬石)이라 표기한 것과는 달리 디딤돌을 놓아 가마에서 타고 내리는 것을 돕고 있다. 오른편으로는 200년 된 은행나무 한그루가 Y자 형태로 서 있으며, 홍살문 정면에 정문 역할을 하는 확연루가 탐방객을 기다리고 있다. ▲ 필암서원 확연후 옆 은행나무
확연루 편액은 파란바탕에 흰 글씨로 우암 송시열(1607~1689) 글씨라 한다. 인종은 즉위 8개월이 되던 1545년 30세 나이로 병사하였고 명종이 보위를 물려받아 하서를 곁에 두려하였으나 하서는 정치를 떠나 고향 장성에서 칩거생활을 통해 후학 양성에 매진하게 된다. 확연루의 의미는 확연대공(廓然大公) 즉, 거리낌 없이 넓게 트여 크게 공평무사하다는 뜻이라 한다. 확연루를 시작으로 일직선상으로 선비들이 공부하고 모여 회의하던 강당인 청절당과 유생들이 공부하며 머물던 오른쪽으로 동쪽 건물 진덕재, 왼편 서쪽 건물 숭의재가 좌우 배치되어 있으며, 이들 편액은 송준길의 글씨라 한다. 넓은 공간에는 두 그루의 은행나무가 양쪽으로 심어져 있으며, 숭의재 앞으로 인조 임금이 하서 선생에게 하사하였다는 목죽도의 목판을 보관한 장경각이 있다. 장경각 현판은 정조 임금의 글씨라 하며, 진덕재 옆으로는 서원에서 제를 지낼 때 가축을 묶어 두고 검사하는 계생비가 있다. 삼문 왼편으로 서원에서 제사를 지낼 때 사용하는 제기를 보관하는 전사청을 두고 있다. 경상북도 청도군 운문사 은행나무 우거진 풀숲너머 운문사에 접어들면 묵묵하게 고요함이 가슴에 와 닿는다. 고개 들어 올려보면 겹겹 솔숲 너머 소나무와 어우러진 암반들이 매번 새롭게 다가온다. 깨어 있으라. 붓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며 마음 수행의 길로 들어 선 여승이 머무는 운문사에 발을 내 딛는다. 숲길이 좁아졌다 다시 길을 틔어 놓고 그 사이로 소담한 이야기가 들려온다. 운문산에서 흘러내린 오염이 없는 청정한 맑은 물은 청도천을 이루며 자연에너지는 산을 푸르게 한다. 솔바람길을 걷는 한순간도 놓치기 아까운 풍경이 바람 따라 흔들리며 반겨준다. ▲ 북대암에서 내려다 본 청도 운문사 경내 은행나무
가을바람이 분다. 호젓한 산길 농익어 떨어진 감을 바라보며 짧은 가을에 마음만 분주해 진다. 고색창연한 절집으로 향하는 바람의길 끝자락에서 만나게 되는 만추의 산사 그 길은 추색(秋色)의 진수를 보여주는 사색의 길이다. 운문사 초입 소나무는 절집 보수공사를 대비하여 심어놓은 것이라고 한다. 그런데 일제말기였던 1943년~1945년에 자원이 부족한 일본군이 우리나라 사람을 강제로 동원하여 연료로 쓰기 위해 송진을 채취한 자국이 60년이 지난 오늘날까지 선명한 상처로 남아 있다. 유마경에서 말하는 청정한 마음을 가지는 곳이 도량이다 하지 않았던가. 명산은 명찰을 품는 법이고 그 속에는 천오백년의 역사를 가진 명찰과 사백년을 훌쩍 자란 은행나무 두 그루가 가을을 품고 있다. 금남의 공간으로 일 년에 딱 1번 그것도 3시간가량 여행자에게 문을 열어준다. 400년을 살아온 은행나무 두 그루를 찾아 일 년을 기다려온 신도와 탐방객을 위한 특별 배려이다. 가을이 면 은행나무가 물들기 시작하고 출입이 금지된 공간에 일반인의 시선을 허락해 준다. 운문사 홈페이지 또는 전화로 미리확인을 해야만 만날 수 있는데 보통 11월 첫 주말에 개방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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