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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승산 수덕사는 1984년 덕숭총림이 되었다. 총림이란 종합수행도량으로 순천 송광사, 양산 통도사, 합천 해인사, 예산 수덕사, 장성 백양사를 5대 총림으로, 2012년 동래 범어사, 대구 동화사, 하동 쌍계사가 추가되어 8대 총림을 두고 있다. ▲ 수덕사 대웅전(국보 제49호) 앞에 심하게 훼손된 석탑 1기가 옛스러움을 대변해 주고 있다.
몇 년 만에 다시 찾은 수덕사는 새로운 옷을 입고 있다. 조촐한 사찰에서 들려오던 풍경소리는 간곳없고 새롭게 단장된 하얀 탑과 곳곳에 자리한 화려한 치장의 사찰을 통해 우리나라 사찰부흥이 새롭게 일어나는 모습이 역력하기만 한 수덕사는 백제 말 숭제가 창건한 백제 고찰로 제30대 무왕 당시 혜현이 묘법연화경을 강설한 유명한 사찰이자 선종 유일의 근본도량으로 알려져 있다. 수덕사로 진입하는 길목이 새롭게 단장되어져 일주문-금강문-사천왕문-황화정무로 통과하면 비로소 대웅전 앞에 도착한다. 사찰로 진입하면 최근 불사한 석탑과 함께 왼편으로 서신당과 범종각이 자리 잡고 오른편으로 종무소와 법고각이 자리 잡고 있는데 이 모두가 좌우대칭이 되도록 하여 같은 형상을 하고 있다. 조금 더 오르면 왼편에 백련당과 정면에 법당인 대웅전이 있다. 수덕사 7층 석탑 (문화재 자료 제181호) 사찰로 들어서기 전에 유독 눈에 띄는 석탑 1기가 있다. 정원처럼 조성된 중앙에 자리한 수덕사 7층 석탑은 1931년 만공대선사가 만든 석탑으로 기단부가 없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기단부를 제외하고 곧장 탑신과 옥개석을 올린 이 탑은 간결하면서 세련된 여성미를 한층 돋우는 소박한 모습을 하고 있다. 안내글을 옮겨보면 다음과 같다. ‘이 탑은 1931년 만공 대선사께서 건립한 석탑으로 기단부 없이 바로 탐신과 옥개석으로 되어 있다. 기단 면석 밖으로 두드러지게 우주를 표현하였고, 면석에는 두께 10cm 정도의 사각 테두리가 돌려져 있다. 탑신부의 옥신은 없는데, 옥신 대신에 4개의 정사면체 석재를 주춧돌처럼 놓아 1층 지붕돌을 받치고 있다. 각 층의 면석과 지붕돌은 별개의 돌로 이루어졌고, 면석 마다에는 우주와 창방이 표현되어 있으며 지붕돌은 2단의 지붕돌 받침을 가지고 있는데 반전이 매우 심하다. 상층부에는 찰주, 보주, 보륜이 올려져 있다. 대체로 간결하면서도 세련된 느낌을 주는 탑이다.’ 수덕사 3층석탑 (유형문화재 제103호) 대웅전 앞에 수덕사 삼층석탑이 자리하고 있다. 유형문화재 제103호인 삼층석탑은 파손이심하더. 신라 문무왕 5년 조성된 이 탑은 통일신라 양식을 한 고려 초기석탑으로 전체적으로 안정감이 잘 잡혀져 있다. ▲ 수덕사 대웅전 앞에 위치한 삼층석탑 안내글을 옮겨보면 다음과 같다. ‘이 탑은 신라 문무왕 5년에 건립되었으며, 원효대사가 중수하였다고 전해지나 통일신라시대 양식을 한 고려 초기의 석탑으로 추정된다. 기단은 2층으로 위층은 4매의 돌로 면석을 조립하였으며, 각 면에는 우주와 탱주가 표현되어있다. 지붕돌과 몸돌은 각각 1개의 돌로 되어 있으며, 1층은 5단의 옥걔 받침을 하였으나 2-3층은 3단으로 되어 있다. 상면에서는 1단의 받침으로 그 위에 몸돌을 받고 있으며, 지붕돌은 끝이 치켜 올라갔다. 상륜부에는 보륜만 남아 있었으나, 찰주, 보개, 복발, 노반을 새로 만들어 놓은 상태이다. 상대갑석과 지붕돌 및 3층 몸돌 일부가 파손이 되었으나, 전체적으로 균형미를 갖춘 석탑이다.’ 수덕사 금강보탑 ▲ 수덕사 삼층석탑 아래 새롭게 조성된 수덕사 금강보탑 수덕사 금강보탑을 만난다. 성력화 중창불사 도중 전탑좌대가 확인되자 그곳에 새로운 탑을 세우고 금강보탑이라 부른다. 탑에는 1988년 덕숭총림 방장 원담대선사가 스리랑카국에서 가져온 진신사리 3과를 모시고 있다. 탑은 2000년 7월 세웠다. 수덕사 대웅전
수덕사 대웅전은 국보 제18호인 영주 부석사 무량수전 과 함께 현존하는 한국 최고의 목조건물로 알려져 있으며, 특이하게도 정면3칸 측면4칸을 하고 있다. 벽면에 세워진 측면 기둥은 양 끝으로 둥근 목재를 사용하고 가운데는 네모로 나무를 가공하여 받쳐 올려 건축의 아름다움을 최대한 살린 것으로 우리나라 고건축의 아름다움을 집결한 모습을 하고 있다. ▲ 수덕사 전경 대웅전은 1308년 조성된 것으로 기록은 정확하게 나와 있는 반면 특이하게도 고려시대 건축물에서 백제의 곡선을 갖추고 대웅전 안벽에는 주악비천, 공양화, 극락조 등 고려시대 그림인 벽화가 자리 잡고 있다. 또한 이곳에서 발견된 오불도는 원본이 전쟁으로 소실되어 묘사본이 박물관에 전시되고 있다. ▲ 수덕사 대웅전 측면 수덕사 대웅전 관련 안내글을 옮겨보면 다음과 같다. ‘백제시대 사찰인 수덕사의 창건에 관한 정확한 문헌기록은 현재 남아있지 않으나, 학계에서는 대체적으로 백제 위덕왕(554-597) 재위 시에 창건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석가, 아미타, 약사 삼존불을 모신 이 대웅전은 1937년 수리공사 때 발견된 묵서의 내용으로 보아 충렬왕 34년(1308)에 건립 되었다. 건축은 고려시대에 유행된 주심포 양식이고 정면 3칸, 측면 4칸 규모의 맞배지붕이다. 바른 돌쌓기 형식의 기단에 사각형의 자연석으로 기둥 놓을 자리를 북돋게 조각한 주춧돌을 놓았고, 그 위에 배흘림 기둥을 세웠다. 정면의 각 칸에는 섬세한 빗살 3분 합문이 있고, 측면에는 맨 앞쪽에 출입문을 설치하였다. 뒷면에는 각 칸에 문을 장식하고 있지만 중앙 칸에만 문을 달았다. 외부에 노출된 가구는 나무가 간직하고 있는 세월의 흔적이 느껴지며, 측면 맞배지붕의 선과 노출된 목부재의 구도는 아름다움의 극치라고 할 수 있다. 건축된 연대가 확실하고 조형미가 뛰어난점으로 한국 목조 건축사에서 매우 중요한 건물이다.’ 수덕사 전설 수덕사에 전해지는 전설로 양반가 집안에 수덕이란 자제가 있었는데 사냥을 즐겨하여 하인들을 데리고 자주 나가곤 했지. 그러던 어느 날 다른 날과 다름없이 하인을 데리고 산속에서 짐승을 찾던 중 노루를 발견하고 활시위를 당긴 채 멍하니 있는 것이 아니겠어. 하인들은 빨리 활을 쏘지 않으면 노루가 도망갈 것이라 재촉을 하였지만 수덕은 전혀 활을 쏠 생각을 하지 않다가 말을 했지. "저기 보이는 게 사람인지 아닌지 너도 한번 보거라." 수덕의 말에 하인은 노루가 있는곳을 다시 한 번 자세하게 보니 정말로 그곳에 아리따운 여인이 있는 거야. 수덕은 사냥을 하지 못하고 마을로 돌아왔는데 어찌된 일인지 그 여인이 이번에는 마을에 있는 게 아닌가. 수덕의 가슴은 쿵쿵 뛰기 시작했지. 여인의 거처를 알게 되면서부터 더욱더 가슴은 뛰기 시작했어. 수덕은 용기를 내어 덕숭낭자를 찾아가 사랑고백을 했지. 수덕의 말을 다 들은 여인은 한참을 생각하다 조용하게 말하는 거야. "저를 그렇게 사랑하신다면 돌아가신 부모님의 영혼을 달래기 위해 집 근처 절을 한 채 지어주십시오." ▲ 수덕사 전경 수덕은 낭자의 뜻이 하도 가상하여 사찰을 만들어 주기로 하고 공사를 시작하면서 서둘러 사찰이 만들어지고 덕숭낭자와 결혼할 꿈에 부풀었어. 절이 완성되자 덕숭낭자에 제일 먼저 알렸지만 덕숭낭자는 반가워하기는커녕 원망하는 눈빛이었어. "부처님을 모시는 절을 짓는데 부처님을 생각하면서 정성을 들여도 겨우 만들어 질까말까 하는데 한낱 여인에게 마음이 빼앗겨 만든 절이니 어찌 기쁘겠어요. 저 뒤를 보셔요." 수덕은 고개들지 못하고 있다가 뒤를 돌아보았어. 그런데 이게 어찌된 영문인가. 완성된 절이 불타고 있지 않은가. 수덕은 마음을 다시 가다듬고 절을 짓기 시작하여 완성하는가 하면 이내 불이나 버리자 이번에는 진정한 불심으로 절을 짓기로 마음먹고 절을 짓자 화재가 나지 않고 덕숭낭자가 달려와 크게 기뻐하는 거야. 수덕의 정성이 하늘에 닿았는지 곧 이어 결혼도 하였지만 덕숭낭자가 또 한 가지 청을 했어 "비록 결혼은 하지만 잠자리만은 당분간 따로 합시다." 수덕은 그토록 기다린 첫날밤이 독수공방할 처지라 화를 내었지. 그런데 갑자기 하늘에서 천둥소리와 함께 비바람이 부는가 싶더니 덕숭낭자가 사라져 버리는 거야. 수덕이는 손을 내밀어 붙잡으려 하였지만 소용없었지. 붙들면서 덕숭낭자의 버선 한 짝이 벗겨져 수덕의 손에 있을 뿐이었어. 수덕은 생각했지 이 모든 일들이 부처님의 뜻이고 덕숭낭자 역시 부처님의 화신이란 걸. 그 후 수덕은 불심에 더욱 깊게 빠져들었고 그 후로부터 수덕사에 버선꽃이 핀다고 하지. 이와 비슷한 전설로는 백제 때 창건한 사찰이 쇠락하면서 중수를 해야 할 정도였는데 워낙 많은 비용이 드는 터라 여간 걱정이 아니었는데 여인이 찾아와 스스로 공양주를 자처했다는 거야. 미모가 뛰어난 여인(수덕각시 불렀다고 한다)이 절에 머물면서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게 되었는데 그 중 신라의 대부호이자 재상의 아들인 정혜가 수덕각시에게 청혼을 하였고 수덕각시는 절의 불사를 들어주면 청혼을 받아 준다고 하였지. 절이 완성되고 정혜가 수덕각시에게 함께 내려갈 것을 말하자 "옷 갈아입을 말미를 주십시오"라며 건너방으로 갔는데 아무리 기다려도 기척이 없어 정혜가 달려가 방문을 열자 수덕각시가 급히 다른 방으로 사라지려 하는 것이었다. 당황한 청년이 붙잡으려는 순간 바위가 갈라지면서 버선 한 짝을 남기고 사라졌다는 거야. 또한 수덕각시가 들어갔던 방이 사라지고 갈라진 바위 하나만 남게 되었는데 그 속에서 버선모양의 꽃이 핀다는 거야. 관음보살이란 걸 뒤늦게 알게 된 정혜는 산마루에서 또 하나의 절을 짓게 되었지. 그 절이 정혜사라 불렀다고 해. 지금은 백련당으로 그 뒤편에 전설의 바위가 있지. 그 바위를 향해 절을 하면서 소원을 빌면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속설이 전해지면서 많은 사람이 찾는다고 해. 수덕사를 출발하여 정혜사까지 다녀오다 수덕사에서 사면석불을 거쳐 소림초당, 관음보살입상, 만공탑을 지나 정혜사 까지 0.98km 구간이며, 이 숲길은 돌계단이 끝없이 이어져 있다. ▲ 대부분 수덕사 방문을 하고 내려선다. 당일 비가 내려 아무도 오르지 않던 길을 따라 다녀온 정혜사 사면석불은 1983년 충남 예산군 봉산면에서 발견된 백제시대 사면불을 2008년 그대로 재현한 불상이다. ▲ 계단길이 끝없이 이어진다. ▲ 1924년 조성한 관세음보살입상 산길 계단이 지루할 만큼 이어진다. 그리고 만나는 이정표에는 소림초당이었으나 출입구가 막혀 있었으며, 조금 더 오르면 향운각과 함께 관세음보살입상을 만나게 된다. 향운각 관세음보살입상은 1924년 만공스님이 조성 봉안한 것으로 모든 중생의 8가지 고통을 덜어주는 감로수 병을 손에 들고 있다.
빗길에 정상까지 혼자 오른다는 것은 어려워 보였다. 돌계단이 미끄러운 탓도 있지만 정상까지 남은 약 1.2KM 구간에 관한 어떠한 정보도 없고, 비가 얼마나 더 쏟아질지 알 수 없어 정혜사 길목에서 발길을 돌려 내려섰다. 수덕사 내려서면 만나는 수덕여관 고암 이응노 화백이 작품 활동을 하던 수덕여관과 우물, 암각화를 포함한 일대 1,504㎡가 기념물로 지정되어 있다. 이응노 화백은 전통과 현대, 동양과 서양의 세계를 접목하는 시도를 한 근현대 미술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질하는 예술가로 국내뿐만 아니라 유럽 화단에서도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수덕여관은 화백이 1944년 구입하여 한국전쟁 당시 피난처로도 사용하였으며, 1959년 프랑스로 건너가기 전까지 머물면서 수덕사 일대의 아름다운 풍경을 화폭에 옮겼던 곳이다. ▲ 수덕여관 수덕여관에 관한 안내글을 옮겨보면 다음과 같다. ‘수덕사 위쪽에서부터 내려온 좁은 개울물이 집 앞으로 흘러 지나가고 개울 건너편에 여관을 배치하였다. 가운데 안마당을 두고 ’ㄷ’ 자 초가가 감싸고 있는 여관은 일제강점기 때 지은 것으로 보이는데 여관만 아니라면 소담하면서 궁색하지 않은 전형적인 농가 모습이라 하겠다. 후면에는 이응노 화백이 사용하던 우물이 있다.‘ ▲ 암각화 암각화에 관하여 안내글을 옮겨보면 다음과 같다. ‘이응도 선생 사적지를 찾는 사람들은 바위 위에 새겨진 암각화를 먼저 찾는다. 이응노는 1967년 동백림 사건에 연루되어 옥고를 치렀고, 1969년 사면된 뒤 다시 프랑스로 떠나기 전 이곳에 머물면서 바위에 2점의 문지적 추상화로 암각화를 남겼다. 둘레 17m, 높이 85m, 또 하나는 둘레 7.6m, 높이 75cm의 바위에 문자체로 그림을 조각하였다. 글자 같기도 하고 사람 모양 같기도 한 것이 역동적으로 표현되어 있다. 무엇을 그린 거냐고 묻는 이들에게 사람이 살아가는 모습이며, 영고성쇠의 모습을 표현했다. 여기에 네 모습도 있고, 내 모습도 있다. 우리가 살아가는 모습이다. 라고 했다는 말이 전해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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