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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해안지역을 제외하고 전국에 비가 쏟아진다는 뉴스에 집에 머물러 있다가 큰 비가 내리지 않을 듯 하여 잠깐 금정산을 다녀오고자 집을 나섰다. 금정산성 출발코스를 어디서 할까 잠깐 망설이다 등산하기 편리한 금정산 범어사 주차장에 거금 3,000원을 주고 주차를 한 후 원효암을 거쳐 엄지바위 그리고 제3망루까지 간 후 되돌아서 고당봉을 거쳐 하산하기로 하였다. ▲ 금정산 고당봉 정상에서 장군봉, 범어사 방향 하산길 데크 주변 안개가 몰려와 시야를 가려 놓았다.
부산을 지키는 신령한 명산 금정산에 위치한 금정산성은 한때 국내 최고의 산성으로 알려져 있었지만 지금은 겨우 복원된 성벽일부와 성문만 있다. 사적 제215호 금정산성은 총 면적 830370.24㎡, 전체길이 17,337m로 현재는 4km만 남아 있다. 범어사를 시작으로 금정산성 사적 제215호 원효암 의상대 원효암으로 오르는 길이 출발부터 힘겹다. 약간의 빗줄기가 스쳐갔는지 바닥은 미끄러웠고 등산로에는 한적하기까지 했다. 이제 한두 번 올라간 원효암 길이 아니다 보니 그리 어렵지 않게 원효암 입구 갈림길에 도착하였고 원효암을 방문하기 전에 의상대와 범어사를 조망하기로 하였다. ▲ 원효암 입구 왼편 등산로를 따라 들어서면 만나는 '의상대' 스님들의 좌선 장소로 알려진 의상대에 오르면 지척인 금정구와 멀리 해운대구까지 조망된다. 능선 끝자락 돌출된 봉우리 주변으로 불쑥 돌출된 다양한 바위들이 서 있거나 서로 기대어 있으며, 바위에는 이름이 각자되어 있다. 의상대에서 곧장 금정산성으로 바라보면 돌출된 바위가 용바위 엄지바위이다. 의상대는 금정팔경 중 한곳으로 금정산 최고 전망대로 알려져 있다. 범어사를 조망할 수 있는 곳은 반대편 계명봉과 이곳 의상대 두 곳으로 가을이면 범어사의 새로운 모습을 만날 수 있다. 원효암은 보수 공사중 원효암 입구 부도 3기와 탑1기를 만난다. 독특한 모습을 한 부도에는 한문으로 음각해 놓아 누구의 부도인지 알 수 있는데 입구 앞쪽에부터 경봉당 선관대사 방광탑(慶峰堂 善寬大師 放光塔). 광무 신축 춘립(光武 辛丑 春立), 춘곡당 민오사리탑(春谷堂 玟梧舍利塔). 응화 이구오삼년 하립(應化 二九五三年 夏立) , ??당 부오 대화상방광탑(00堂 玞珸 大和尙放光塔) 등 세분이지만 그들의 업적에 관한 이야기는 전해지는 것이 없다. ▲ 엄지바위에서 바라 본 원효암 3기의 부도탑 앞으로 1기의 석탑이 초라한 모습으로 자리를 지키고 있다. 본래부터 그 자리를 지켜왔는지 아니면 옮겨져 왔는지 알 수 없지만 안내글에는 원효암 동편 삼층석탑으로 안내하고 있다. 석탑 주변은 활엽수와 편백나무가 도열하며 원효암으로 향하고 그 중간에 탱자나무 울타리가 밭의 경계를 삼고 있다. 이 깊은 산중에 도둑 걱정이 되어 탱자나무로 울타리를 쳤을까 싶다. 의상대사가 범어사를 창건할 때 원효대사가 미륵암과 함께 세웠다는 곳이 바로 원효암이다. 금정구 청룡동 지명의 유례 '청룡바위' 엄지바위로 향하기 전 마애불을 잠깐 찾아 내려선다. 마애불의 정확한 이름은 없다. 바위가 절묘하게 넘어져 통천문(天通門)을 만들고 그 안으로 들어서면 연화좌대 위 좌상을 한 미륵불과 자연석이 흡사 용을 닮아 그 안에 여의주를 물고 있는 모습이 예사롭지 않다.
‘當來敎主彌勒尊佛(당래교주미륵존불)’ 석문을 통해 미륵존불로 예상된다. 1924년 갑자 11월에 석우(石牛)라는 분이 여러 사람과 힘을 모아 미륵불을 조성했다는 석문을 세워 놓고 통천문 바깥에 불기 2968 신사 7월(1941년 7월)에 31명이 참여 명단을 수록해 두었다. 용의 모습을 하고 있는 바위를 두고 청룡바위(쌍용바위)라 한다. 엄지바위(매바위)에서 쉬어가다 매바위 또는 엄지바위라 한다. 원효암을 배경으로 탁 트인 조망과 금정산에서 보기 드문 바위가 한꺼번에 모여 있으며, 반대편으로 용바위가 함께하고 있다. 매의 얼굴 모습을 하고 있어 매바위라 불렀지만 멀리서 보면 엄지를 척 추켜올린 모습이라 언젠가부터 엄지바위로 통용되고 있다. ▲ 의상대에서 바라 본 엄지바위 전경 엄지바위 옆 용바위 ▲ 엄지바위에서 바라 본 용바위 전경 엄지바위에서 멀리 해운대신도시를 비롯하여 회동수원지가 한눈에 조망된다. 날씨가 맑은 날이면 금정산 능선 암봉을 비롯하여 시원한 바람이 머무는 곳이기도 하며, 엄지바위를 돌아 용바위를 둘러본 후 조금 더 올라서면 원효봉으로 향하거나 제4망루로 향하는 갈림길을 만나게 된다. 등산로를 벗어나 알바를 하다 ▲ 헤마다 다시 합류한 제4망루 800m 남겨둔 지점 오르막길 엄지바위를 떠나 용바위에서 이정표가 헷갈리기 시작했다. 한 번도 반대편으로 올라간 적이 없는 코스였고 오직 제4망루 이정표만 따라 진행하였는데 길이 자꾸만 희미해지고 사람이 지나갔나 싶을 만큼 점점 깊은 곳으로 들어서고 있어 몇 번을 되돌아 나왔다. 결국 잃어버린 제4망루길 을 되찾기 위해 하염없이 내려와 하산길에 지나간 길을 만나고서는 다시 길을 붙잡고 올랐다. 제3망루 동문에서 북쪽으로 약 1km 정도 이동하면 제3망루에 도착한다. 등산로를 따라 진행하다보면 자칫 놓치고 가기 쉬운 금정산성 제3망루는 아찔한 절벽 위 자리 잡고 있으며, 탁월한 전망을 자랑하는 곳이다. 외부에서는 전망대가 전혀 보이지 않는다. 바위길을 따라 내려서면 그제야 숨어있는 전망대가 모습을 드러낸다. 또한 전망대 주변에는 건물 기와 파편이 곳곳에 흩어져 있다. ▲ 왼편 제3망루 전경 제3망루에 관한 안내글을 옮겨보면 다음과 같다. ‘금정산성 유명한 나비바위와 부채바위 주변의 천구만별(천 마리의 거북과 만 마리의 자라)의 모습을 한 바위와 어울려 아름다운 자연경관의 찬탄을 자아낸다. 제3망루는 능선 동쪽으로 돌출되게 이어진 암반사이 경사면에 축대를 쌓고 정면 2칸, 측면 1칸의 맞배식 망루를 설치하였다. 망루의 서쪽 10여 m 전방 바위면에는 번위돈 이라는 음각명이 새겨져 있어 돈대(성안 높직한 평지에 높게 축조한 포대)였음을 말해 주고 있다.’ 제3망루 - 제4망루 금정산성길 금정산성은 대자연이 만든 성곽 토르(Tor)는 영국 지방에서 유래 한 ‘똑 바로 서 있는 돌탑’이란 지방어로 금정산에는 다양한 암석이 흡사 탑을 쌓은 듯 풍화에 의해 형성되어 있으며, 이를 이용하여 산성을 쌓은 대표적인 산성이다. ▲ 제4망루로 향하는 오르막 구간 ▲ 나비모양을 하고 있는 나비바위
금정산성은 사적 제 215호이다. 안내글을 옮겨보면 다음과 같다. “ 금정산성은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겪고 난 후인 1703년(숙종 29)에 국방을 튼튼히 하고 지킬 목적으로 금정산에 돌로 쌓은 산성으로 성벽의 길이는 18.845m, 성벽높이 1.5~3m, 총면적은 약 8.2㎢에 이르는 국내 산성 가운데 가장 규모가 큰 산성이다. 처음 산성을 쌓은 시기는 문헌상으로 확실하지 않으나, 남해안과 낙동강 하류에 왜구의 침입이 심하였다는 사실로 미루어 신라시대부터 성이 있었다는 견해도 있다. 그리고 1667년(현종8) 통제사 이지형이 왕에게 금정산성을 고칠 것을 건의하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1703년 이전에 산성이 존재했음을 알 수 있다.” 제4망루 금정산성은 삼국시대 또는 그보다 앞선 시기로 추정되는 옛 성으로 현종 8년(1667) 통제사 이지형이 왕에게 금정산성을 수리할 것을 건의하는 기록을 바탕으로 이미 1667년 이전에 성벽이 존재했음을 말해준다. 숙종 29년(1703) 성벽을 보수하였다. 숙종 33년(1707) 성이 너무 넓어 관리가 힘들자 성 중앙을 남북으로 구분하고 성을 쌓았지만 영조 50년(1774) 지키기 어렵다는 이유로 폐지하고 순조 6년(1806) 성을 고쳤지만 일제 강점기 당시 파괴되어 성곽의 형체가 불분명해져 버렸고 그 후 1974년부터 동문과 서문, 남문, 북문을 차례로 복원하였다. ▲ 제4망루는 현재 보수공사 작업중이다. 금정산성은 사적 제 215호이다. 안내글을 옮겨보면 다음과 같다. “ 금정산성은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겪고 난 후인 1703년(숙종 29)에 국방을 튼튼히 하고 지킬 목적으로 금정산에 돌로 쌓은 산성으로 성벽의 길이는 18.845m, 성벽높이 1.5~3m, 총면적은 약 8.2㎢에 이르는 국내 산성 가운데 가장 규모가 큰 산성이다.
처음 산성을 쌓은 시기는 문헌상으로 확실하지 않으나, 남해안과 낙동강 하류에 왜구의 침입이 심하였다는 사실로 미루어 신라시대부터 성이 있었다는 견해도 있다. 그리고 1667년(현종8) 통제사 이지형이 왕에게 금정산성을 고칠 것을 건의하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1703년 이전에 산성이 존재했음을 알 수 있다.” 의상봉을 스쳐 원효봉까지 진행하다 의상봉은 620m 로 금정산성 제4 망루에서 바라보이는 언덕 위 바위산이다. 의상봉에 관해 안내글을 옮겨보면 다음과 같다. " 의상봉은 금정산성 제4망루가 있는 위쪽의 봉우리로 동해의 망망대해를 한눈에 바라보는 망대의 역할을 할 수 있는 봉우리이다. 늠름하고 고고한 자태로 웅크린 호랑이가 동해를 바라보며 부산을 지키는 지혜로운 모습이다. ▲ 제4망루 앞 무명바위와 뒤로 의상봉이 자리잡고 있다. 전설에 따르면 용이 여의주를 물고 승천을 하려고 하는데 갑자기 산신령 호랑이가 나타나 승천을 저지하기 위해 한참 격렬한 몸싸움을 하게 되었다. 마침내 무승부가 되어 두 봉우리로 변해 위쪽에는 용을 저지하는 형상의 호봉이 되고 아래쪽에는 용을 닮은 용봉이 되었다. 이 두 봉우리를 합쳐 용호봉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1970년대 산악인들이 의상봉이라 명명하여 오늘에도 부르고 있다.
의상봉에서 마주하는 큰 바위산이 바로 무명바위(용바위)이다. 엄청난 위압감을 주는 바위를 밧줄 하나에 의지하여 오르는 전문가들의 모습이 바라만 봐도 손에 땀이 흐를 지경이다. 일반인에게는 출입금지 구간이기도 하다. ▲ 안개에 갇혀 있는 원효봉 원효봉에 오른다. 탁 트인 전망과 함께 금정구를 배경으로 멀리 회동수원지까지 한눈에 조망된다. 긴긴 가뭄에 저수량이 줄여든 회동수원지를 바라보니 농민보다 더 답답하다. 원효봉 안내글을 옮겨보면 다음과 같다. “금정산 동쪽 가장 높은 봉우리로 먼저 어둠을 헤치고 동해에 떠오르는 햇빛을 받아 갓 피어난 매화처럼 화려한 자태의 빛깔로 수놓아 ”으뜸의 새벽“ 원료봉(887m)이라 불렀다. 금정산성 제4망루 위쪽에 자리 잡고 있어 동해 망망대해를 한눈에 바라 볼 수 있고 전망대 역할을 하고 있는 봉우리다. 김유신장군이 원효봉에서 낭도들을 훈련시킬 때 바위에서 부동자세로 오래 서 있어, 선 채로 소변을 보았는데 어느 낭도가 그 자리에 소나무 한 그루를 심었다. 이 땅달보 소나무는 오랜 세월동안 비바람을 이겨내고 그 푸름을 뽐내고 있어 사람들은 ”김유신 솔바위“ 라고 불렀다고 전해져오고 있으나 현재 정확한 위치는 알 수 없다.” 금정산성 북문 고당봉에서 약 1km 내려서면 북문이다. 부산을 지키는 신령한 명산 금정산에 위치한 금정산성은 한때 국내 최고의 산성으로 알려져 있었지만 지금은 겨우 복원된 성벽일부와 성문만 있다. 사적 제215호 금정산성은 총 면적 830370.24㎡, 전체길이 17,337m로 현재는 4km만 남아 있다. 금정산 북문에 도착하면 주변 일대 습지지역으로 출입을 통제하고 있다. 수영강(온천천)과 낙동강(대천천)으로 연결된 지류의 발원지로 알려져 있지만 훼손되었고 오늘날 자연습지를 복원하기 위하여 노력하고 있는 곳이다. 북문에서 금성동까지 3.2km, 범어사 1.7km, 동문 3.8km, 고당봉 1km 구간이다. 고당봉 고당봉(801.5m)은 금정산의 주봉으로 북문에서 언덕길을 따라 약 900m 거리이며, 범어사에서 오른쪽 산길을 따라 오르면 약 2.5km 거리로 산정상 아래 고모당이 있으며, 부산 앞바다와 낙동강이 한눈에 조망된다. 고당봉의 어원은 고려때까지 모든 산신은 여신으로 금정산 역시 할미신이 존재하여 할미 고(姑), 집 당(堂)을 사용하여 고당봉이라 부른다고 한다. ▲ 고당봉 100m 앞둔 지점에서 만나는 고당봉샘터 온천천과 대천천의 발원지이며, 2017년 6월 30일 자연친화적으로 조성되었다. 고당봉(고당귀운)은 부산 금정산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하고 있으며, 올해 벼락으로 인하여 새로운 표지석이 자리하고 있으며, 구름이 감싸는 날이면 바닷속에 떠 있던 섬이 흰 파도가 몰아치면 사라져 버리는 것처럼 기상천외한 모습을 보여주는데 고당봉에 흰 구름이 걸려 있을 때 마치 천상의 세상을 연상케 한다하여 ‘고당구운’이라 불렀다 한다. ▲ 고당봉으로 향하는 구간 안개가 모여 시야를 가려 놓았다. ▲ 고당봉 고모당 전경 고당봉 바로 아래 고모당이 있다. 고모당 전설을 옮겨보면 다음과 같다. “지금으로부터 400여 년 전에 밀양 사람인 박 씨가 결혼에 실패하고 불가에 귀의, 범어사에서 화주보살이 되어 절의 살림을 꾸려 가는데 신명을 바쳤다. 이 보살은 큰스님에게 ‘제가 죽으면 화장을 하고, 저 높은 고당봉에 고모명신을 모시는 산신각을 지어 고모제를 지내주면 높은 곳에서 수호신이 되어 범어사를 돕겠습니다. 라는 유언을 남기고 숨을 거두었다. 큰스님은 그 유언대로 고당봉에 산신각을 지어 해마다 제사를 지냈더니 과연 범어사가 아주 번창한 사찰이 됐다. 한때 젊은 스님들이 당제를 지내는 것을 못마땅하게 생각하여 당집을 훼손했는데 그 뒤로 좋지 않은 일들이 일어나 다시 고모당을 고쳐지었다고 한다. 사실여부는 알 수 없지만 고모당의 신성함과 영험함을 일러주는 전설이다. ▲ 고당봉 전경 ▲ 정상 고당봉 ▲ 벼락맞은 고당봉 정상석은 보전하고 새로 세운 고당봉 정상석 고당봉(801.5m)은 금정산의 주봉으로 북문에서 언덕길을 따라 약 900m 거리이며, 범어사에서 오른쪽 산길을 따라 오르면 약 2.5km 거리로 산 정상아래 고모당이 있으며, 부산 앞바다와 낙동강이 한눈에 조망된다. 고당봉의 어원은 고려 때까지 모든 산신은 여신으로 금정산 역시 할미신이 존재하여 할미 고(姑), 집 당(堂)을 사용하여 고당봉이라 부른다고 한다. ▲ 정상에서 장군봉 방향 하산길 데크 ▲ 정상을 바라 본 모습 동국여지승람에는 산마루에 우물이 있는데 그 우물 속에 한 마리 금 빛 나는 물고기가 오색구름을 타고 천상에서 내려와 우물 속에 놀았다하여 금정산이라 부르며, 지금도 고당봉 근처 바위에 금샘이 존재하며 항상 물이 마르지 않는다. 전하고 있다. 범어사-의상대-원효암-마애불-엄지바위-상마마을 등산로 합류-제3,4망루 중간 성벽도착-제3망루-제4망루-북문-고당봉-범어사 순으로 이동하였다. 총 13.3km / 4시간 30분 소요 그리고 한장의 사진
고당봉 정상을 내려서다 마애불 방향에 이상한 색상이 보였다. 누가 바위에 야영텐트를 쳤을까? 안개 속 희미하게 보이는 짙노랑색은 계속 그 자리에 있어 호기심에 사진을 담았다. 그런데 집에와서 확인해 보니???
금정산 호랑이 인가? 엄청난 크기로 보였던 그 모습은 흡사 호랑이다. 금정산에 호랑이가 있을 수 없지 않는가. 그럼 넌 누구냐? 고양이가 아닐까 싶다. 근데 고양이가 저리 큰 것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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