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이전 여행지/유적 트레킹

유적트레킹 - 영남 4대 누각으로 명성을 떨쳤던 의성 문소루

허영꺼멍 2020. 4. 13. 08:33

-




영남 4대 누각으로 명성을 떨쳤던 의성 문소루


경상북도 의성군 의성읍





 경북 의성군 의성읍 홍술로 106


벚꽃나무와 벚꽃나무 사이 짧은 오르막 길 그리고 사람의 발길이 쉬이 닿지 않는 구봉산(九峰山. 211m) 끝자락 봉우리 음악에 이끌려 날아든 봉황 한 마리 사뿐 내려 앉아 떠날 줄 모르니 바로 오늘 방문지 문소루(聞韶樓)”이다. 본래 문소루는 읍내 객사 뒤편에 있었지만 한국전쟁으로 폐허가 되면서 이곳으로 옮겨 복원되었으며, 구봉산 역시 일제 강점기 이전까지는 구성산(211m)으로 불릴 만큼 전략적 요충지였다 한다.


▲ 문소루 전경    


 



구봉산에는 현재 복원된 문소루 누각을 비롯하여 의성을 다녀간 13명의 현령 공덕비, 유아숲체험숲, 트레킹코스가 있으며, 의성전통시장과 인접하여 연계관광하기 좋다. 문소루 진입공간은 독특한 구조를 하고 있다. 계단을 통해 2층으로 오른 후 문을 닫아 버리면 다른 사람이 올라 올 수 없는 구조를 하고 있다. 은밀함이 필요한 공간이었을까?








안내글에 의하면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우리군을 문소(聞韶)’라 이름한 것은 신라 경덕왕16(757)부터 이고. 를 창건한 연대는 고려 중엽으로 추정된다. 공민왕때 현령 이원제가 중건하였으나 효종8(1675) 정유화재로 소실된 것을 숙종 20(1694)에 현령 황응일이 두 번째 중건하였다.”



 




진주 촉석루, 밀양 영남루, 안동 영호루와 함께 교남(영남)사대루로 불리던 문소루(의성북루객사)는 정확하게 언제 만들어 졌는지 알 수 없지만 대략 고려 중엽으로 추정하고 있다. 숙종 20년 중건 그 이후 문소루는 한국전쟁으로 다시 전소, 본래 읍내 객사의 북쪽인 의성관아 뒤편에 있던 것을 198212월 구봉산 제9봉에 팔작기와 지붕을 올린 정면 3, 측면 3칸 규모의 2층 누각으로 복원하였다.



남대천을 내려 보다 정면 현판과 마주한다. 어려운 한자 현판이라 휴대폰 도움을 받아 본다. 시대가 시대인 만큼 정보는 도처에 있기 마련이다. 현판은 簫韶九成鳳凰來儀한글로 소소구성봉황래의옛날 하()나라 순임금이 음악을 9번 연주하니 봉황이 와서 춤을 추었다는 내용이었다.



뜬금없다 싶어 현판 내용의 출처를 더 열어 보았다. “於是夔行樂(오시기행악)祖考至(조고지)群后相讓(군후상양)鳥獸翔舞(조수상무)簫韶九成(소소구성)鳳皇來儀(봉황래의)百獸率舞(백수솔무)百官信諧(백관신해)” “이때 기()가 음악을 연주하자 조상의 혼령이 강림하고 제후들은 예를 갖추어 양보했으며, 새와 짐승들도 춤을 추었으며, 소소(簫韶)9절까지 연주하자 봉황이 날아와 거동하였고 온갖 짐승이 서로 이끌고 춤을 추었으며 백관은 믿음으로 서로 화합하였다.”







고려 태조 12(929) 후백제 견휜은 5천 군사에게 문소(聞韶) 의성부(義城府) 공격을 내렸다. 당시 의성부는 김홍술(金洪術)이 지켰지만 결국 전사하자 태조는 비록 적장이지만 그 충절을 기려 "()로운 성()" 바로 오늘날 의성(義城)으로 명명(命名) 하였다 한다.







여행자 청개구리의 우물밖 세상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