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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의성군 "조문국" 나라 작약꽃 피어나다.

허영꺼멍 2020. 5. 25. 0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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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의성군 조문국사적지 작약꽃 하트속으로

GPS: 경북 의성군 대라리 377-2


시나브로 모란(목단 牧丹)꽃 떠나가는, 미처 작별인사를 할 틈 없이 함박꽃(작약 芍藥)이 앞다투어 활짝 피어나 유혹을 한다. 탐스러운 꽃이 함지박처럼 넉넉하다하여 ‘함박꽃’으로도 알려진 작약은 한방에서 빼 놓을 수 없는 중요한 약제로 재배되다 최근 꽃의 향기와 파란색을 제외한 다양한 색상으로 피어나는 꽃의 아름다움을 가까이서 보려는 인구가 늘어나면서 정원수로 각광받고 있다.

 

 

▲조문국 사적지 작약꽃밭... 이상기온을 딛고 피어나다.

우리나라 작약꽃은 이제 전국에 걸쳐 있다고 봐도 무난하지만 작약하면 경북 의성군이다. 경상북도농업기술원 유기농업연구소에서 작약관련 다양한 우수한 품종의 유존자 보전과 품종개발을 위해 노력하며. 농촌진흥청에서 개량한 품종 중에 ‘의성작약’으로 명명된 작약이 있을 만큼 의성군에는 한때 산골마다 많은 작약밭이 있었지만 이제는 점점 사과나무에 그 영역을 내 주면서 의성군에서도 작약을 만나기 힘들다.

 

의성군에서 탑리로 향하는 중간 도로변에 조문국 사적지(경북기념물 제125호) 내 500㎡규모, 1만4000여 작약꽃을 심었다. 작약은 흔히 백작약과 적작약으로 구분하는데 대부분 꽃 색깔 때문으로 알고 있지만 작약의 뿌리를 삶아 껍질을 벗긴 것은 백작약이고 뿌리껍질을 벗기지 않은 것을 적작약으로 구분하고 있다. 또한 함박 피어나는 작약꽃과는 달리 꽃말은 수줍음. 부끄러움이다.

 

 

고대 삼한시대 초기국가 조문국(召文國)

조문국의 영향권은 인근지역 상주, 문경, 단양, 울진, 영덕까지 세력을 확장하였지만 신라가 북부지방으로 진출하기 위해서는 조문국이 가로막혀 있었고 결국 조문국 제21대왕을 마지막으로 약 369년의 역사가 신라에 편입된 것으로 보인다. 오늘날 조문국의 흔적으로는 주변 대리리, 학미리, 탑리리 등에서 약 260 여 고분이 확인되며, 경상북도 기념물 제128호로 지정되어 있다. 현재 조문국 사적지내에는 40여기 고분을 복원하였다.

 

▲ 경덕왕릉과 고분전시관 전경

고대 삼한시대 초기국가 조뮨국(召文國)에 관한 기록은 삼국사기(三國史記) 지리지에 고려 시대 의성부(義城府)였던 문소군(聞韶郡)이 본래 조문국이란 기록을 시작으로 조문국은 의성읍으로부터 남쪽 25리 지점 금성면 일대라 말하며, 벌휴왕 2(185) 파진찬 구도와 일길찬 구수혜를 좌우 군주로 삼아 조문국을 벌했다 한다.

 

조문국은 신라에 병합되면서 조문군으로 편재되었다 한다. 조문국에 관한 기록으로 삼국사디 권이 벌휴이사금종는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三年春正月親祀如祖廟大赦二月 拜坡珍 仇道 一吉 仇須兮 爲左右軍主 代召文國 軍主之名 始於比이는 벟유이사금 1월에 왕이 친히 시조사당에 제사 지내고 죄수를 크게 사면하였으며 2월에 차진찬 구도와 일길찬 구수혜로서 좌우군주로 삼아 조문국을 정벌했는데 군주라는 이름은 이때 처음 시작되었다,’는 뜻이라 한다.

고분과 함께 비석, 상석 등이 있는 유일한 곳으로 이를 경덕왕릉이라 한다. 둘레 74m이며, 높이 8m이다. 고분 앞으로 가로 42cm, 높이 1.6m 비석이 세워져 있다. 조문국 고분 내 이를 제1호 고분으로 지정 해 놓고 있다. 1호 고분은 경덕왕릉으로 삼한시대 부족국가이던 조문국이 이곳에 도읍하여 신라 벌휴왕 2(185)에 신라 문화권 병합되기 전까지 이 일대를 군림했던 조문국 경덕왕릉으로 의성현령의 꿈에 이곳이 현몽되어 발견하였고 오늘날 매년 봄이면 춘계향사를 지낸다고 한다.

조문국 사적지에 또하나 만나는 것으로 문익점면작기념비가 있다. 고려말 공민왕 당시 원나라 사신으로 갔다 오면서 목화씨앗을 붓대롱에 넣어 가져왔다는 일화는 모든 이들이 다 알고 있을 만큼 알려져 있는 문익점(1329~1398)의 이야기 이다. 문익점이 가져온 씨앗을 첫 파종 한 곳이 자신의 고향인 경남 산청지역인데 왜 의성군에 문익점면작기념비가 있을까하는 의문도 들기 마련이다.

조문국사적지 전경

문익점은 씨앗을 시험재배하기 위해 장인이던 정천익(鄭天益)에게 보내고 관찰사가 되어 지방을 순시하던 중 의성군 금성산 일대가 목화씨앗을 구한 곳과 비슷하여 금성면 제오동에 목화씨를 재파하였다 한다. 조선 태종 당시 문익점의 손자 승로가 의성 현감이 되어 부임하면서 금성산 자락 금성면 일원에 면화 파종하였다하여 기념비를 세운 것이며, 산청군 단성면 사월리에는 사적 제108호 문익점 시배지가 있다.

 

▲의성작약

 

목화면작기념비가 있는 주변 일대는 한때 우리나라의 목화생산에 크게 기여하였지만 점점 그 수요가 줄어들면서 목화씨앗을 뽑는 공장도 사라지고 이제는 관상용으로 재배하는 것이 전부이다.

 

 

 


뭉크의 절규 장엄한 핏빛 노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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